칼의 노래 보통날

요새 한국소설을 계속 읽게 된다.
사춘기를 겪고 나서 부터는 외국 소설만 읽었다.
국내소설을 읽는 건 극히 드물었다.
익숙한 이름의 등장인물을 보면 왠지 낯부끄러웠고, 너무 일상에 바짝 닿아있는 소설들이 버거웠던 것 같다.
어른들의 이야기도 재미가 없었고.
어른이 되어서 일까.
어느샌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님이 늘어가고, 국내소설을 찾아 읽게 되었다.
특히나 싫어했던 역사소설까지도.


책소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그린 수작!

지난 20년간 문학동네를 통해 독자와 만나온 빛나는 작품들을 새롭게 선보이는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제14권 『칼의 노래』. 21세기 한국문학의 정전을 완성하고자 구성한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열네 번째 작품은 한국문학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작가 김훈의 역사소설로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고자 하는 무인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조선의 명장 이순신이 일인칭 서술자로 등장해 죽기를 각오하고 전장으로 나아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임금의 명을 거부했다는 죄로 옥고를 치르다가 풀려나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게 된 정유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적탄을 맞아 전사한 이듬해 11월까지의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저자 특유의 남성적 문체로 이순신의 고독하고 불안한 내면을 예리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20세기 이후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만을 선정 출판하는 ‘전세계 문학총서’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이 책 정말로 좋다.
책의 모든 것이 훌륭하다.
이야기의 구성, 내용의 재미는 물론 문장 하나하나가 완벽하고, 멋이 있고, 품위가 있다.
정말 귀한 책을 읽었다.

미사여구 없는 문장이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허투루 된 문장이 단 한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모든 챕터의 첫문단이 미칠듯이 아름답다는 게 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건지.
이런 훌륭한 작가님을 이제서야 읽다니.

한자로 된 단어가 많고 전쟁 관련 단어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와 핸드폰을 끼고 책을 읽었다.
사전을 찾을 때 흐름이 끊기는게 싫어도 이 책에서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읽어나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더욱이 지리에 약해 지명을 계속 찾으며 지도를 띄워놓고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흐름은 아무런 영향없이 마냥 좋았다.

작가는 이 책을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은상의 『충무공전서』와 작가가 지어낸 대목의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고 적었다.
독자라면 알겠지만 이 소설은 소설일 수만은 없다.
이 소설은 마치 난중일기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인것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글인지 이순신의 글인지 헷갈리는 지경에서 서문을 보면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6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내가 읽은 모든 서문 중 단연 명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모든 챕터의 첫 문단이 정말 아름답다.
첫 문단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든 작가가 알지만 누구나 이렇게 경이로운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첫 문단이다.

13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 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다도해에 해가 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을 읽었는데 눈 앞에 노을지는 바다가 보였다.

또 다른 첫 문단이다.
이 문단에서는 담담하게 적을 표현하는데, 역시 일본군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특히 첫문장에 이 전쟁의 상호 성격을 한 문장으로 함축함에 감탄했다.

62 성난 파도와도 같은 한없는 적의가 어떻게 적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작동되는 것인지, 나는 늘 알지 못했다. 적들은 오직 죽기 위하여 밀어닥치는 듯했다. 임진년에 나는 농사를 짓듯이, 고기를 잡듯이, 적을 죽였다. 적들은 밀물 때면 들이닥치는 파도와도 같았다.

봉화를 설명하는 글도 참 좋다.
적의 봉화를 비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봉화에 담겨진 의미가 가슴깊이 와닿는다.

299 산맥의 어두운 능선을 따라가며 불의 칼날들이 돋아났다. 바람이 잠든 날, 적들의 봉화는 곧고 높았다. 싸리나무를 태우는 적의 불꽃은 맑고 맹렬했다. 불의 깊은 안쪽은 푸르고 고요했고 길게 뻗쳐올가간 불꽃의 꼭대기에서 새빨간 혀들이 날름거렸다. 적들의 봉화는 불의 칼처럼 어둠을 찔렀다.

이순신 장군이 의금부에 끌려가 형벌을 받는 장면의 표현력 또한 굉장하다.
아픔을 멋있고 강렬하며 완벽한 비유로 표현했다.

169 서울 의금부 형틀에 묶여 있을 때, 임금의 형장刑杖은 몸을 가득 채우며 파고들었다. 눈앞에 캄캄한 절벽이 일어섰고 매가 거듭될 때마다 절벽은 흰빛으로 부서져나갔다. 그리고 또 절벽이 일어섰다. 형장이 내 하반신에 닿을 때, 적탄에 맞은 왼쪽 어깨 뼈 속까지 아픔의 번개들이 치받고 올라왔다.

이순신에게 가장 큰 적은 일본군인 것 같기도 하고, 임금 같기도 했다.
이 유명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 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처음 알게 된 것 같다.(소설임에도)
선조는 한심하기 그지 없었으나 이순신은 임금을 가여워했고, 무서워했다.
임금이 자신을 죽여 사직을 보존하고 싶어했고 자신을 살려 사직을 보존하고 싶어 했음을 알기에 언제 임금의 칼이 자신에게 돌아올지 알 수 없어서 끊임없이 고뇌했다.
왕을 향한 가장 큰 감정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종종 가여움에는 동정이 제외됐다.
유지를 보고 임금이 멀리서 보챔으로써 전쟁에 참가하고 있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임금이 할 수 있는 소리냐며 귀를 의심하기도 한다.

임금이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인다.
백성의 상황을 살피고 아파하고 분노하며 수군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그들을 보살핀다.
수영을 옮길 때마다 따라다니는 백성들을 챙겨 이동을 돕기도 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수군과 백성을 두루 보살핀다.
수영 내 수군들과 수영 밖의 백성들은 이순신의 백성이었다.
백성들은 함대가 나아갈 때 울었고 돌아올 때 울었다.
백성은 늘 울었다고 말했다.
백성을 항상 살피기 때문에 이를 알았고, 그들을 측은히 여겼다.

149 -나으리의 몸이 수군의 몸입니다.
 -그렇지 않다. 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

이순신 장군의 암담한 심경은 소설 전반에서 느껴진다.
백성의 참혹함에 암담했고, 수군의 가난함에 암담했고, 왕의 적의에 암담했고, 적들의 전력에 암담했다.
왕의 적의는 이순신 장군의 숙사 담벽에서 마지막 전쟁까지 함께 했다.
이순신 장군은 찬 청정수를 마시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의 암담한 심경을 씻어줄 청정수를 갈망하는 것이다.

120 면사첩을 받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아들 이면의 죽음앞에서 이순신 장군은 더욱 참담해졌다.
죽은 아들이 꿈속에 나와 원통함을 전하자 이를 다그치며 물리지만 아들을 죽인 적과 마주했을 때 분노하는 반면 어린 적의 모습에서 아들을 떠올리며 적의 존망을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 서글펐다.

가장 좋았던 건 명량해전 부분이다.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도 좋았고, 전쟁의 다이나믹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의 리더쉽과 용맹함이 빛을 발하는 모습과 열악한 환경에서 전략을 펼쳐 대승하는 역전의 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전쟁의 긴박함과 무관하게 장군으로서 느끼는 고단함도 좋았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듣고 전율하는 장졸들을 보며 함께 전율했다.

총탄을 맞은 이순신 장군은 군관 송희립에게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한다.
지금껏 알고 있던 적에게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은 사실 아군에게 하는 말이었음을 알았다.
수군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전세에 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한 말이었다.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자연사로 여기고 자연사 하고 싶다는 이순신 장군의 소원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루어졌다.
이로써 이순신 장군은 죽음까지도 찬란하게 저물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써진 소설이라 줄거리를 정리하지 않았지만 뭔가 부족한 기분이다.
독서 후에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단을 필사하곤 하는데, 이 책은 언젠가 한 권 전체를 필사해야겠다.

298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술 취한 명의 하급 지휘관들이 히데요시의 유언시를 노래로 부르며 춤을 추었다. 술 취한 이국 군대들이 부르는 노래가 칼처럼 내 마음을 그었다. 그날 나는 취했다. 내 마음속에서 내 칼이 징징징 울면서 춤을 추었다. 저러한 노래, 저러한 시구를 이 세상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보통날

책소개

나를 둘러싼, 내가 모르는 세계로 향하는 비밀의 문 ‘구동치 사무실’로 초대합니다!

김중혁의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저자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자신의 비밀을 탐정에게 의뢰해 세상에서 지워지게 하는 ‘딜리터DELETER’ 혹은 ‘딜리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통의 사람이 아닌 특별한 개인 한 사람에 대한 통찰과 깊은 사랑으로 구체적으로 상상해낸 독특한 소재와 설정이 독자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깊게 땅을 판 다음 음식물 쓰레기와 동물의 시체와 곰팡이와 사람의 땀과 녹슨 기계를 한데 묻고 50년 동안 숙성시키면 날 법한 냄새가 나는 비밀이 가득한 악어빌딩 4층에 자리한 구동치 탐정 사무실. 셜록도 코난도 아닌 탐정 구동치는 자신과 계약한 사람이 죽은 뒤에 기억되고 싶은 부분만 남기고 떠날 수 있도록 사람의 발자취와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한다. 힘 있는 재력가와 그의 추악한 비밀을 차지한 이들 사이에 거래가 벌어지고, 그들로부터 비밀을 지워달라는 딜리팅 요청을 받은 구동치는 수사를 시작하는데…….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출판사 서평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유쾌하고 쿨한 시선, 그 속에 따뜻함과 존엄이 있다
―그것이 김중혁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걸어 나가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탐정 구동치의 삶을 억누르게 되자 구동치는 점점 자신의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런 구동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악어동네이다. 구동치는 악취가 나는 악어빌딩도, 다닥다닥 붙은 집들도, 길과 길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골목도 좋아한다. 골목 속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가파른 골목과 산길로 연결되어 악어가죽의 무늬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살며 새벽이 되면 몰려나와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골목을 걸어 내려와서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레밍쥐들 같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같지만 이러한 일상의 숭고와 대면하며 구동치는 그 사람들 하나하나를 존경했다. 김중혁은 서늘하고 음습하며 냄새나는 기운을 묘사하며 우리를 악어동네로 인도하지만 막상 그 동네에 들어가 보면 구동치와 같이 친근하고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독특하고 개별적인 사람 누구라도 하루라는 일상의 숭고와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 자신이 충분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누구보다 이런 일상을 사는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고 웃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구동치가 김인천 형사가 쓴 소설 「역지사지 살인사건」을 읽은 뒤 평가하는 장면은 인상적인데,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소설을 관통하는 뜨거운 심장이 느껴졌다”가 그것이다. 작가는 그런 소설을 꿈꾸지 않았을까. 어떤 관념에 이르기보다는 사람들 속에 숨은 슬픔의 틈을 이해하는 작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따뜻하게 느껴진다.

[예스24 제공]


스포일러 줄거리

구동치는 의뢰인의 죽음 후 그가 요구한 물건을 없애주는 딜리터이다. 의뢰인인 배동훈의 추락사 후 딜리팅할 물건인 태블릿피시가 사라졌음을 알고 조사를 시작한다. 조사 중 태블릿피시가 구동치의 또 다른 의뢰인 이영민의 손에 들어간 사실을 알게된다. 구동치의 형사시절 선배인 형사 김인천은 배동훈의 죽음이 살인임을 의심하고 구동치와 협력하여 함께 조사한다. 태블릿피시에는 엔터테인먼트의 회장 천일수에게 위험한 영상이 있음을 알게되고, 이를 쫓던 중 김인천이 죽고만다. 한편 다른 의뢰인인 정인수의 죽음 이후 구동치는 딜리팅 중 딸 정소윤을 마주치는데, 그녀는 아버지의 사진을 되찾기 위해 구동치를 따라다닌다. 천일수 아래에서 일하는 원수도장 무술인들과 이영민은 돈과 태블릿피시를 교환하기 위해 만나고, 태블릿피시 카피본을 보관중인 구동치가 원수도장을 쫓아가 태블릿피시를 가로챈다. 구동치는 천일수에게 태블릿피시를 들고 가 김인천을 죽인 이영민의 처리를 부탁한다. 이 후 딜리터일을 그만 둔 구동치는 정소윤에게 사진을 돌려준다.


11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소설의 주인공 구동치가 따라 부르는 아리아의 가사이다.
이 책의 제목이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인 이유.
김중혁 작가님이 소설에서 실재하는 음악이나 영화 제목 따위를 쓰지 않는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찾아보니 이 역시 허구였다.

줄거리 정리하다가 그래서 배동훈을 죽인게 원수도장이었나? 싶어 배동훈을 검색하니 정소윤이 배동훈 딸이라고 소개하는 글들이 보인다.
일단 성이 다른데.
구동치가 정인수의 컴퓨터 하드를 지우려고 자택에 침입했다가 정소윤을 마주쳤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구분이 쉽게 될 듯.
결국 책을 다시 폈다.
정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대사형이 사람을 죽였다'는 대사와 '그건 사고였다'는 대사를 보면 천일수의 경호실장인 나영욱이 죽인 것으로 보인다.

소설의 장점은 위트있는 대사와 주변인물들의 유쾌함인데, 문제는 장점이 그것 뿐이다.
맥거핀도 아닌 것이 조명되는 등장인물이 쓸데없이 너무 많다.
드라마 작가부터 사실 정인수와 정소윤조차 구동치의 캐릭터 설정만 붕괴 시킬 뿐 사족같은 캐릭터가 한 둘이 아니다.
이리탐정도 굳이 등장해야 했을까? 없는 편이 구동치에게 더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인데, 드라마도 단역에겐 이름을 주지 않는다.

이 소설에 핵심인 구동치 캐릭터가 너무 애매하다.
소설 속 설명을 보면 입이 무겁고, 어떤 식으로든 끝까지 일을 해결하고, 나름의 원칙도 있다.
하지만 캐릭터의 설명이 충분치 않은 초반부터 이영민을 만나고 '원칙에 어긋나지만' 이라며 바로 원칙을 깨는 모습을 보인다.
완벽하게 일처리 한다는 설정과 다르게 정소윤에게 딜리팅 중 목격당하는 것도 어설프고, 심지어 딜리팅 부탁받은 물건을 몰래 보관하다가 결국 정소윤에게 사진을 돌려주기까지 한다.
정말 가관이다.
입이 무겁다면서 배동훈과 이영민의 사건은 형사와 다른 탐정에게 상세히도 설명한다.
구동치의 탐정 소설인데 주인공이 이렇게 별로여서야.
마지막엔 죽은 형사의 복수를 위해 모든 증거가 있음에도 이 소설의 최대 빌런인 천일수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정도로 매력없게 만든다고? 주인공을?

그리하여 나에게 이 소설의 백미는 김인천 형사의 유머와 악어빌딩 사람인 백기현, 차철호의 원수도장 막내 납치사건이다.
소설 초반 김인천 형사의 취조장면까지는 소설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용의자인 이강혁을 취조하던 중 김인천은 이강혁에게 담배를 권한다.

"피워도 됩니까?"
"왜 그래? 담배 그렇게 좋아하는 분이."
"여기 금연 아니에요?"
"씨발, 형사를 무슨 개좆으로 보나. 내가 여기서 담배 피우다가 경찰한테 걸려 벌금 내겠냐?"
"형사님이야 괜찮겠지만……"
"피울 거야, 말거야?"

라는 티키타카 후 이강혁이 담배를 피우자

"여기 카메라 달린 거 알지? 씨발, 딱 걸렸어. 흡연 현행범. 취조실 흡연은 벌금 백만 원이야."
"뭡니까?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쫄기는, 농담이야. 얘기나 얼른 계속해."

라는 유머.
하지만 초반부터 꽤 비중있게 다룰 것 같던 김인천형사도 존재감이 급속히 사라져 주변인물1이 되고만다.

납치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악어빌딩 2층 합기도장과 악어동네 봉제공장에 불이 나는데, 우연히 방화범을 목격한 합기도장 관장 차철호는 범인을 납치한다.
증거도 없고 범죄 현장을 본 것도 아니지만 단지 수상한 모습에 범인임을 확신한 것이다.
그리고 1층 철물점 사장 백기현을 데리고 와 납치한 범인을 보여준다.

301~306 "야, 차 관장, 독한 데가 있네. 사람을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어."
 "이렇게 해야 도망을 못 가죠."
 "이제 어떻게 하려고?"
 "어디 한 군데 분질러 놓으면 슬슬 얘기를 시작할 겁니다."
 "일단 질문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가 불질렀어? 왜 질렀어? 이유가 뭐야? 이런 거 물어봐야 하지 않아? 영화 보면 다 그렇게 하더라."
 "아저씨가 잘 몰라서 그래요. 이런 놈들은 질문부터 하면 마음이 늘어지고 거짓말부터 떠올리거든요. 영화에서야 멋있게 하려고 그러는 거고, 단도직입적으로 훅, 들어가줘야 합니다. 제가 무도인 아닙니까. 고통, 이런 거는 제가 전문입니다. 이런 놈들은 일단 고통을 받고 어디 한 군데 부러져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거든요."
……
 "지금 이놈이 뭐라고 하는 거 같은데?"
 백기현이 차철호에게 말했다.
 "지금은 들을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입 열어줘봤자, 살려달라, 내가 안 그랬다, 그런 얘기밖에 안 해요."
 차철호가 남자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야 차 관장 무서운 사람이었네. 이런 모습 처음이야."
……
 "야, 여기 없는 게 없네요."
 차철호가 가방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차 관장, 내가 말했잖아. 이런 애들은 얼굴 처맞고 팔다리 부러지는 건 많이 겪어봤을 거야. 이렇게 도구를 사용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줘야 진짜 고통을 알 수 있지."
 백기현이 으스대며 말했다.
 "뭘로 한번 해볼까요?"
 "못 같은 거 괜찮지 않아? 바닥이 나무니까 엄지발가락에다 못을 박으면 꼼짝 못할 거 아냐."
 "못 좋네요. 망치는 어디 있어요?"

결국 고문까지는 안갔지만 이렇게 범인을 납치후 감금까지 하는 모습이 너무 웃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납치한게 원수도장의 막내라는 것과 자기도 모르게 악인을 응징하게 되는 상황이 유쾌하다.

소설이 끝난 후 에필로그로 구동치는 사진을 없애달라는 의뢰를 받고 노르웨이로 향한다.
의뢰인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가족사진을 없애달라는 의뢰였는데, 한국사람이 없어서 자신의 존재를 쉽게 들키고 만다.
사진을 없애는 대신 아끼는 걸 달라는 요구를 받아 아버지의 점퍼와 닮은 자신의 패딩을 사진과 함께 바다에 던진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에필로그는 꽤 괜찮았다.
김중혁 작가님이 단편을 잘쓰는 건지.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 위주로 구동치를 만들었다면 더 괜찮은 소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구동치는 에필로그에서도 들킨다.

409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결국 마지막에 이를 것이고, 우리는 절대 그 시간을 돌이키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은 결국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돌아갈 길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행복해진다.

참, 이야기 중간에 천일수가 회사에서 포르노물을 실물로 감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포르노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본 가장 야한글이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쓸 이유가 있나 싶을정도라 경악했다.
이 책 19금 걸려야 되는거 아닌가.
작가님 연애물 못쓴다더니 이 건 또 다른가보다.
진짜 이건 좀.

소설이 별로라 줄거리나 정리해야지 했는데, 요샌 뭘 쓰든 글이 길어진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보통날

김중혁 작가의 첫번째 연애소설이라는 단편집.
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요요'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책으로 2015년 제4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상황과 비율_007
픽포켓_045
가짜 팔로 하는 포옹_089
뱀들이 있어_123
종이 위의 욕조_159
보트가 가는 곳_199
힘과 가속도의 법칙_233
요요_263

작가의 말_302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그게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김중혁 네번째 단편소설집, 첫번째 연애소설집

소설가 가운데 이이만큼 ‘잡(雜)’한 자 또 있을까. 좋은 걸 좋게 볼 줄 아는 타고난 심미안의 소유자니 그간의 삶이 꽤나 피곤했을 거라 짐작도 해보거니와 동시에 그가 전력에 도통 바닥이란 게 나지 않는 무한한 호기심의 별에서 왔을 거란 확신도 해본다. 그렇다고 뭐, 그가 ‘어른’ ‘왕자’란 얘기는 아니다. 어쩌면 “평범하고 작고 눈길 가지 않는” 이 시대 평범한 남자들의 대부가 또한 이이가 아닐까 해서다. 서두가 길었다. 우리 시대의 또 한 명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김중혁 작가의 얘기다. 그리고 그의 신작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막 꺼내든 참이다. 숫자로 치자면 네번째 소설집이고, 그의 입을 빌리자면 첫번째 연애소설집이다. 대놓고 연애라니, 그렇다면 주요한 테마를 ‘사랑’으로 잡았다는 얘기인데 세상 그 어떤 소설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서 쓰일 수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김중혁이 이야기하는 남과 여’는 보다 특별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왜? 서두에 밝혔듯이 그는 ‘잡(雜)’한 남자니까. 잡종은 원래 변종과 별종을 낳는 법이니까.

2000년 『문학과사회』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등단 15년을 맞은 그다. 김중혁은 사계절마다 형형색색으로 피었다 지는 다양한 꽃 보기를 즐겨하는 수목원의 산책자를 닮았다. 그간 그가 펴낸 소설집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일층, 지하 일층』, 장편소설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그리고 독특한 기획으로 펴낸 여러 산문집들과 동료와의 협업 글쓰기의 결과물들을 가만 보고 있자면 그 재주의 넓이와 깊이가 마구잡이로 늘었다가 줄어드는 흡사 검은 고무줄 같다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된다. 힘껏 당겨 한껏 늘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또 심드렁해져서 가만 내버려두고 싶으면 그렇게 해서 원래의 사이즈로 돌아오게 만드는 고무줄. 일례로 김중혁의 산문집 제목들을 한번 보자. 『뭐라도 되겠지―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메이드 인 공장―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대책 없이 해피엔딩―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그리고 『모든 게 노래』까지 그 제목들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은 그를 그답게 보이는 데 제 역할을 다할 뿐 아니라 몹시 부러운 작가다 싶은 질투마저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왜? 제멋대로 보고, 제멋대로 쓰고, 제멋대로 그리고, 제멋대로 담아내는 재주와 담아낼 수 있는 기회는 아무나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시간은 화살일까 쳇바퀴일까

고무줄 얘기를 툭 하고 던졌으나 기실 괜히 던져본 단어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소설집의 대표작이랄 수도 있겠거니와 이미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요요」. 이 단편 속 ‘요요’의 이미지가 어쩌면 그의 ‘고무줄’ 같은 재능을 닮아 있을지 모른다는 억측이든 추측이든 해보는 게 그리 엉뚱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요요. 한때 시인 정끝별은 같은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었다. “당신이 나를 지루해할까봐/ 내가 먼저 멀리 당신을 던져봅니다/ 달아날 수 있도록 풀어줌으로써/ 나는 당신을 포기합니다/ 포기는 복수/ 포기는 쾌락/ 그리고 포기의 보상// 당신은 늘 첫 떨림으로 달려옵니다// 던졌다 당기고/ 풀렸다 되감기고/ 사라졌다 되돌아오는// 천 갈래 던져진 그물 길/ 오요, 오요, 오 요요”라고. 시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요요’는 무엇보다 시간을 재는, 그 시간을 가늠케 하는, 그 시간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껴안으면서 떠안고 있는 무시무시한 도구가 아닌가.

그렇다.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를 붙잡고 보니 ‘시간’이란 얼굴이다. ‘시간’이란 얼마나 큰가. ‘시간’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시간’이란 그래서 얼마나 당혹스러운 주제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시간’ 속을 살고 있는 걸까. 시계 속 시침과 분침을 바라보자면 “우리는 시간은 반복되는 것이며 회전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시간은 흘러갈 뿐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외려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시간의 성질을 직선의 화살이나 순환하는 쳇바퀴 어느 하나로 파악하고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요요」의 주인공 차선재의 스무 살 시절 첫사랑(장수영)은 편지에 이런 구절을 남겨놓고 돌연 자취를 감춘다.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는 중인 걸까.” 이후 독립시계제작자로 살아간 차선재에게 시간이란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장수영이 남긴 질문은 그의 삶을 지배하는 화두가 되었다. 차선재가 쉰다섯 살 되던 해 시계작품 전시를 열었을 때, 장수영은 아무런 예고 없이 그를 찾아온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쉰다섯이 된 스무 살 시절 첫사랑이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사람처럼 35년 만에 차선재를 만나러 온 것이다. 장수영의 귀환은 장수영이 차선재에게 던졌던 질문의 귀환이기도 했다. 이윽고 차선재는 35년 묵은 그 질문 앞에서 무릎을 탁 친다. 이제는 그 질문에 “요요의 시간”이라고 응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요요의 시간.” 자신은 결코 지난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그 시간으로부터 자신은 멀어지고만 있다고 생각했던 차선재에게, 느닷없이 그때의 시간이 되돌아온 것이다, 꼭 요요처럼.

우물쭈물 사랑에 뛰어든 사내들의 총천연색 속사정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 그들로 꽉 차버린 지구라는 우리 공간. 그래서 데이터라는 통계가 필요하기도 하다지만 김중혁은 이 모든 인간의 잡스러움이 외로움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듯하다. 알잖은가. 다들 외롭지 않은가. 그래서 서로의 위치를 쉴새없이 확인할 수 있는 갖가지 수단을 무던히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집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고 찰스 디킨스는 그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말했다.(「픽포켓」) 이 한 문장이 김중혁의 이번 소설집과 그 궤를 함께한다면 바로 이 단어, ‘비밀’이라는 말을 공유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사람이라는 비밀, 사랑이라는 비밀, 그 무수한 비밀 속에서 우리는 삶이라는 단어를 구출을 해야 할까, 삶이라는 단어로부터 탈출을 해야 할까. ‘폭죽’이라는 두 글자를 따로 떼어 “폭과 죽, 뭐 이렇게 이상한 단어가 다 있어”(「종이 위의 욕조」)라며 작가가 일상에 돋보기를 씌워보는 까닭이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그만의 장기인 빠른 읽힘의 힘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일부러 쉬어가라는 듯 찍어둔 쉼표 사이사이 그만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은 여전히 젊다. 특유의 재치도 양껏 잘 녹여냈다. 그러나 뭐랄까, 앞선 소설들과 다르다면 다를 묘한 지점 하나가 또 눈에 들어온다. 멀겋고 말갛고 깊고 푸른 ‘슬픔’의 물구덩이들이 소설 여기저기에 무심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 물구덩이가 보인다. 김중혁이 놓았으니 물구덩이는 아닐 거야, 징검다리겠지, 하고 씩씩하게 밟았는데 힘껏 밟은 그 발끝에서 일대 파란이 인다. 물구덩이에서 튀는 물이 얼굴과 옷만 적시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그 척척함을 남긴다. 실로 어쩔 수 없는 인간사라는 관계의 헛함이 알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남과 여라는 관계에 있어 왠지 쿨할 것만 같은 작가 김중혁에게도 ‘사랑’이란 매번 ‘첫사랑’이겠구나 싶은 구절은 묘하게 또 반갑게 읽히기도 한다. 이제야 왜 김중혁이 이번 소설집을 일컬어 ‘첫 연애소설집’이라 칭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그가 굳이 숨기려고 애쓴 적도 없지만 또한 애써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던 남녀 사이의 내밀한 틈 같은 것, 이를테면 그 관계의 자잘한 균열에서 지진까지의 진폭 같은 것, 그 사랑이라는 관계의 문제를 시간의 문제와 더불어 전면에 드러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게 그의 의도이지 않았을까.

“옆에 같이 있어줄 수 있어요?” “그럼요. 그게 제가 할 일입니다”(「상황과 비율」)라고 말하는 사랑.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대”(「가짜 팔로 하는 포옹」)라고 말하는 사랑. “생각은 가슴에 기름을 들이부었고, 가슴은 이제 머리까지 장악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손끝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 애초에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지만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가장 컸다”(「뱀들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랑. “두 사람의 키가 비슷해서 손을 잡고 걷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차선재는 이렇게 손을 잡은 채 평생 걸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요요」)라고 말하는 사랑. 그래 이런 사랑. 이 사랑 다음에 무엇이 올까. 사랑 그다음에 김중혁이 꺼낼 패는 또 무엇일까. 신작 소설집을 꺼내들면서 다음 신작에 대한 기대를 앞서 덧대는 게 욕심임을 알면서도 못 참고 그 호기심을 던져보는 건 지금 이 시간에도 김중혁은 예서 쉬었다 가지 않고 또다른 새로움을 찾아 길 위에 서 있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그 바지런함 그 분주함, 보는 우리야 뭐 즐겁다지만!



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요요」 심사평


이 작품은 시계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애틋한 연가(戀歌)이자 영원에 대한 꿈의 서사라 할 수 있겠다. 존재감의 박탈과 죄책감으로 인해 일찌감치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포기하고 시계라는 무기물의 세계로 침잠한 주인공은 오랜 세월을 시계 제작에 바치면서, 흐르는 시간의 의미를 터득하고 고독하고 삭막한 삶이지만 인생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는 인식을 얻는다. 이 소설은 김중혁 소설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결코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특유의 경쾌함과 서술력으로 강하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번잡한 수식도 장식도 쳐내버리고 전략적인 평이함을 택한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사유와 페이소스는 일정한 격조를 지키며 깊고 짙은 여운을 남긴다. _오정희(소설가)

[예스24 제공]


동인문학상이라는 말에 홀려 읽었다.
김중혁 작가님 특유의 가벼움이 살아 있어 좋았다.
첫 연애소설이라는 소개에 어떨까 했는데, 첫 단편부터 강렬했다.
김중혁 작가님의 소설의 첫문장이라니 믿을 수 없는 문장.
"포르노 시장은 매년 가파른 성장률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는 '요요'가 가장 좋았다.
어느 정도냐면 여러가지 의미로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다른 단편도 좋지만 단연 뛰어나서 나에겐 이 소설을 위한 단편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제 새벽 세 시가 되면 이 단편이 떠오를 것 같다.
새벽 세 시라니 이 얼마나 감성적인 시간인가.


내용정리(스포일러)

상황과 비율
포르노에 상황을 기획하고 비율을 맞추는 상황감독 차양준은 감독과의 문제로 촬영을 거부하는 포르노배우 송미를 찾아간다.
감독을 바꾸고 촬영 시 옆에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배우를 복귀 시킨다.
촬영 중 차양준을 향해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탁구공이 자신의 심장 속으로 들어간 것을 느낀다.

픽포켓
고등학교 2학년인 이호준과 장우영은 좋아하는 여자가수 기민지의 실종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으러 부산으로 간다.
부산에서 퇴학을 당했던 호준의 친구 진구를 만나 그의 자취방으로 간다. 호텔에서 일하는 진구 친구의 정보를 기다리다 민지가 탈출했다는 뉴스를 보고 진구의 그림을 받아 집으로 돌아간다.
기민지는 납치되어 부산의 호텔에 갇혀 있다가 탈출해서 회사 대표에게 전화한다.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이 예민한 탓을 한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알콜중독자 규호는 헤어진 여자친구 정윤을 불러 술을 마시며 같은 알콜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피존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한다.
피존은 뭐든 잠가야 하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데, 단추가 피존에게는 문과 같았다. 이혼 후 향수냄새가 나는 위스키에 중독 되어 매일 한병을 마시는데, 그가 죽던 날 위스키 두 병이 있었다.
규호는 계속 술을 시키고 정윤은 그를 두고 자리를 떠난다.

뱀들이 있어
정민철은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들로 구술점을 치는 할머니가 나오는 스마트폰 게임을 만들고 있다. 어느날 고향의 지진 소식을 듣고 친구 오규호에게 연락하지만 연락이 닫지 않는다. 
정민철은 사랑했던 류영선과 오규호의 결혼 후 고향을 찾지 않았지만 동네를 직접 보고 싶어 고향으로 간다. 피해자 가족 대기실에서 실종된 규호를 기다리는 류영선을 만나고 지진은 큰 뱀이 땅속에서 몸을 뒤트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곳에서 또 지진이 발생한다.

종이 위의 욕조
큐레이터인 용철은 단어를 자꾸 잊어버린다. 화가인 미요와 전시회 준비 중 같은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혼자 지은 병명인 명사 분실증을 알려준다. 용철은 회식자리에서 가방을 잃어버리는데, 필름이 끊겨 기억할 수 없던 와중에 미요와 끝말잇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취한 미요가 가지고간 가방이 용철의 것이었음을 듣고, 가방을 돌려준다.

보트가 가는 곳
크리스마스 이브 낮선 외계비행물체가 나타나 땅에 지금 1미터의 구멍들을 만들었다. 수많은 구멍들은 하나의 길을 만들었고 구멍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한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길을 따라가던 중 정화를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져 서로 의지하며 바다에 도착한다. 바다에서 사람들은 더이상 갈곳이 없어져 섬으로 가기 위해 바나나로 보트를 만드려 하는데, 바나나 더미 주위에 서있던 정화는 구멍에 빠지는 사람을 구하려다 같이 구멍으로 떨어진다. 나는 바지로 만든 튜브와 이 기록을 남긴 수첩과 함께 바다로 뛰어든다.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자해공갈단인 현수는 불법운전하는 차량에 몸을 부딪혀 돈을 번다.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됐다며 헤어진 이후로 현수는 살아갈 의욕을 잃었다. 불법 유턴 차량을 향해 끔찍한 고통이길 바라며 몸을 던진다.

요요
차선재는 자신을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둘이 살며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생활이 시작됐다. 중학교 3학년 친구들과의 고리가 모두 끊어진다. 고등학교 2학년 외삼촌이 사준 기계식 손목시계를 무심코 뜯어 보고, 시계에 완벽한 세상에 반한다. 그 후 새벽 3시가 되면 낙서 대신 시계를 조립한다.
지방대학 시계제조공학과 입학하고 멀티미디어편집과 2학년인 장수영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겨울방학 연락 없던 장수영은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36살에 독립시계제작자가 되어 2년동안 만들어낸 '시간이흐른다'라는 시계가 호평을 받아 유명해지고, 장수영에게 메일을 받게된다. 그녀가 제작한 동영상들을 보고 3개월 후 만날 약속을 한다. 그녀를 위해 'Station'이라는 시계를 만들지만 아버지의 병세로 결국 만나지 못한다.
55세가 되어 열린 전시회에 장수영이 찾아 오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한다. 공방으로 돌아와 그녀를 위해 만들었던 미완성된 시계를 다시 꺼내지만 완성하지 않고 다시 서랍에 넣는다.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요요'라는 시계를 만들기로 한다. 


'뱀들이 있어'에서 정민철은 지진이 난 고향의 부러진 나무와 갈라진 땅과 다친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에는 동정심과 묘한 기대심리가 뒤얽혀 있다.
이런 묘한 기대감에 말못할 동질감이 느껴지는 한편으로, 그마저도 포장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바로 앞장에서 우재의 행방불명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류영선의 파일을 만들어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집착과 미련이 가득한 이 남자는 자신의 게임에 지진을 생기게 해야겠다는 결심까지 한다.
정민철은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컴퓨터를 수리하고, 관련 소모품을 팔며 스캔, 복사, 팩스 등의 업무까지 하는 일상에 묻혀있는 인물이다.
너무나 친근하고 평범한 인물이 저런 스토커적인 모습을 보이고, 친구에 대한 증오로 지진에 쾌감까지 느끼는 걸 보면 매우 찝찝하다.
작가는 이런 장면을 아주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게 해설하므로 별 생각 없이 그냥 쭉쭉 읽어 나가다가 한 번 더 내용을 떠올릴 때 이런 찝찝한 불쾌감이 생긴다.
이 소설은 단편으로만 끝내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장편으로 썼다면 좀 더 진득한 소설이 됐을텐데.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책 제목이기도 하거니와 단어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가장 기대했으나 좀.. 싫었다.
일단 술에 취한 사람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술주정을 글로 읽고 있자니 정말 고역이였다.
심지어 어찌나 글을 잘쓰는지 글에서 술냄새가 난다.
강박증과 엄청난 덩치에 알콜중독자이며 상처때문에 망가져가는 피존은 마치 7년의 밤의 최현수를 생각나게 해 끔찍했다.
아 정말 싫은데 문득 7년의밤 책을 괜히 팔았다 싶어졌다. 이런 이야기의 최정점인듯한 소설인데.

통상적으로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은 '종이 위의 욕조'와 '요요'정도이다.
정말 연애소설집이라니.
김중혁 작가님 너무 좋다.
'종이 위의 욕조'는 아마 초기치매환자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는데, 무시하듯 가볍게 훑고 가는게 더 아릿하다.
이 단편에서 유일하게 연애하는 듯한 티키타카가 등장한다.
작가님이 이런 대사를 쓴다는 게 너무 귀엽다.

186 가끔 큐레이터의 야망이 지나치게 드러난 대목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어요.
애교 부린 거네요, 미요씨한테.
애교를 들킨거죠.
낯뜨겁네요.

'요요'는 첫사랑 같은 소설이다.
말그대로 차선재에게 장수영은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이다.
평생을 순결하고 애틋하게 첫사랑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우울하고 단정한 느낌은 일본 소설 같기도 하고 아버지의 병 때문에 다시한번 사랑을 놓치는 장면은 한국식 신파적이기도 하다.
차선재 캐릭터 또한 그렇다.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고독하게 한가지에 몰두하는 오타쿠적인 성향이 매우 일본스러운 캐릭터인데, 지고지순함은 한국적이다.
요요를 읽으면서 작가님이 정말 일본소설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완벽하게 내 취향만 골라골라 받으셨다.(작가님 취향이겠지만)
정말 최고의 혼종소설이다.
소설의 모든 문장이 좋다. 단어 하나하나 다 좋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공기가 좋고 시계부품 냄새와 풀냄새도 좋다.

276 "손잡고 걸을까?"
 말을 끝내자마자 장수영이 손을 잡았다. 차선재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한겨울 차가운 바깥에 있다가 따뜻한 집으로 들어왔을때처럼 모든 게 아득했다. 두 사람의 키가 비슷해서 손을 잡고 걷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차선재는 이렇게 손을 잡은 채 평생 걸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292 "미안하구나."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요?"
차선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기 있게 해서."
"괜찮아요."
"가봐도 돼."
"아니에요. 쉬세요."
 아버지는 뭔가 얘기를 더 하려다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스케치를 하고 있는 차선재를 보고는 그만두었다. 사각거리는 만년필 소리가 아버지의 말을 가로 막았다. 차선재는 만년필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책은 그 동안 읽었던 단편집 중에 가장 좋다.
단편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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