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보통날

출판사 서평

현대 극문학의 전신인 희랍 비극을 완성한 위대한 작가 소포클레스
완벽한 비극의 모범이라 일컬어지는 「오이디푸스 왕」을 포함하여
진실을 좇는 인간의 복잡하고 모순된 내면을 깊이 통찰한 네 편의 비극 수록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 도서ㆍ서울대 권장도서 100선ㆍ연세대 필독도서 200권

▶ 「오이디푸스 왕」은 발견과 급전을 가진 가장 완전한 비극의 전범이며, 호머의 서사시보다 훨씬 우월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 「안티고네」는 윤리적 갈등을 통해 사회 역사의 변화에 따른 집단의 갈등을 제시한 최고의 작품이다.
- 헤겔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희랍의 삼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대표작들을 수록한 『오이디푸스 왕』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17)으로 출간되었다. 소포클레스는 아테나이가 절정기로 향해 가던 기원전 5세기의 복잡하고 모순된 경험들을 동시대 다른 어떤 극작가들보다 심오하게 통찰해 그려 내고 기교와 형식 등 다방면에서 희랍 비극을 완성해 긴 생애 동안 희곡을 통해 최고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평생 120편이 넘는 비극을 썼는데, 현재까지 전문이 남아 있는 작품들 가운데 희랍 비극의 완벽한 모범이라 불리는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해 「안티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 등 뛰어난 구성과 치밀한 묘사, 심오한 주제 의식이 두루 빛나는 결정적 작품 네 편을 수록했다. 이들 작품은 서양 고전학자 강대진이 희랍어 원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서양 고전과 신화에 관한 오역과 오류를 바로잡으려 애쓰는 역자인 만큼, 무조건 술술 읽히도록 지나치게 가공된 문장이 아니라 다소 낯설고 거칠더라도 표현의 본뜻과 속뜻을 해치지 않도록 가능한 한 희랍 원문에 가깝게 옮긴, 역자가 말하는 ‘한 걸음마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들을 통해 소포클레스의 걸작들을 보다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다.

희랍 비극을 완성한 종합예술가 소포클레스

희랍 비극은 다양한 현대 극문학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작품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희곡이자 각각의 문장이 운율을 가진 시이며,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코로스의 가무는 오늘날의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쉽사리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희랍 비극의 형식은 아테나이 황금기의 여러 작가들을 거쳐 소포클레스의 손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소포클레스가 활동하던 당시는 문학을 비롯해 모든 예술이 전무후무할 만큼 화려하게 꽃핀 시대였다. 아테나이에서는 해마다 디오뉘소스 축제가 열렸는데, 소포클레스는 이때 상연하기 위해 희곡을 쓰고, 연극에 삽입할 음악과 무용을 고안하고, 그의 연극에 출연할 모든 배우와 합창단원들을 지휘하고 훈련시켰으며, 때로는 직접 역을 맡아 연극에 출연하면서 전 생애를 보냈다. 스물여덟에 비극 경연 대회에서 선배 아이스퀼로스를 물리친 그는 월등한 창조성으로 아이스퀼로스나 후대의 에우리피데스보다 훨씬 오래 활동하며 더 많은 작품을 썼고 경연 대회에서도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소포클레스는 평생 120여 편의 비극 작품을 썼으며, 기본적인 기법과 격조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긴장감을 지닌 상황 속에 다양한 인물들의 성격과 심의(深意)를 절묘하게 담아내는 희랍비극의 독특한 형식을 완성시켰다. 아이스퀼로스의 삼부작 형식을 각각 완전한 형식을 갖춘 세 편의 희곡으로 바꾸었고, 아이스퀼로스가 대사를 말하는 배우 두 명을 채택한 것과 달리 여기에 세 번째 배우를 추가하여 극적 갈등의 범위를 넓혔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소포클레스를 다른 비극작가들보다 높이 평가하고 「오이디푸스 왕」을 비극의 전범이라 칭송한 것은 바로 이처럼 완벽한 형식 때문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 스스로 불행을 택하는 인간의 복잡하고 모순된 내면을 통찰한 작품

소포클레스는 고전 문명의 본질적 요소인 신과 인간의 관계(종교), 인간과 인간의 상호 작용(사회) 등을 시대에 따라 새로운 해석을 낳으며 영원히 회자되는 위대한 희곡 작품으로 바꾸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끊임없이 옷을 바꿔 가며 무대에 오르는 것은 작품의 주제가 시공의 구애 없이 인간의 근원적인 내면을 꿰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항상 위기, 특히 고통이나 그 고통의 절정인 죽음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그의 희곡에서는 신이나 자연력의 작용보다 대표적인 인간상들 간의 상호 작용이 흐름의 중심에 선다. 신들은 영원한 힘과 현실 구조를 구현한 화신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반면, 인간은 이런 힘과 구조에 의해 차단되고 시간과 변화, 고통과 죽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어두운 무지 속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볼 때 작품 속 인물들은 언뜻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의 운명에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이들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 위험한 선택을 하며 굴욕적인 삶을 사는 대신 자신이 택한 파멸적인 결과를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소포클레스 비극에서 불행과 고통,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무의미하지 않다. 불행과 고통, 죽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거짓된 삶에서 진정한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낳거나 변화의 조짐이 된다. 죽음 같은 고통(정신이나 육체의 고통 또는 정신과 육체의 고통)은 진실에 대한 이해를 낳는 동시에 ‘재생’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소포클레스가 상상해 낸 오이디푸스는 전설에 나오는 모순된 오이디푸스, 즉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비참한 인간,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풀지만 정작 자신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 범죄자를 쫓는 범죄자이며, 그와 동시에 공격적이면서도 너그럽고, 오만하지만 자신이 놓친 진실을 찾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며, 모든 것을 잃고 추방되는 마지막 순간에 외려 끈기를 회복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되었다. 결국 소포클레스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실을 찾기 위해 자기 의지대로 삶을 이뤄 나가는 주체적 인간상을 보여 준다.
소포클레스는 자유롭게 각색한 신화들을 자신의 독특한 주제 의식과 복잡하게 뒤섞어 완벽한 비극 형식 안에 녹임으로써 겉으로 보이는 줄거리만으로는 그 속에 담긴 참뜻의 가닥조차 잡을 수 없을 만큼 다층적인 희곡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오이디푸스 왕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도시가 기근과 역병에 시달리자, 처남 크레온을 통해 얻은 신탁대로 선대 왕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밝혀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내려진 불행한 신탁, 즉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한다는 저주가 자신이 해결하려고 든 사건과 뒤얽혀 실현되었음이 드러난다. 소포클레스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근원적 질문을 담고 있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오빠의 장례를 두고 외삼촌 크레온과 대립하면서 생기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오빠인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법으로 금지하고 그 법을 어긴 안티고네를 돌무덤에 가둠으로써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지 않고 산 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로 인해 안티고네와 그녀의 약혼자인 자신의 아들이 죽고 그 죽음을 슬퍼하며 아내마저 죽어 버리자 자신이 안티고네에게 행했던 대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홀로 이승에 남겨지게 된다.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 정치적 사고방식과 혈연적 사고방식 등 세계의 양 극단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극명한 대비로 인한 극적 긴장이 뛰어나다.

아이아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인 아이아스는 또 다른 영웅인 아킬레우스가 죽으면서 남긴 무구를 두고 벌인 투표에서 오뒷세우스에게 지게 되자 치욕 속에서 분노한다. 그러던 중 아테네 여신이 꾸민 덫에 걸려 들판의 짐승들을 오뒷세우스와 그 외 희랍 군사들로 착각해 밤새 도륙하다 정신을 차린 후 수치심에 자결한다. 아이아스의 동생 테우크로스가 그의 장례를 치르려 하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군 사령관인 그의 형 아가멤논이 이를 반대하는데, 아이아스의 숙적이었던 오뒷세우스가 도리어 이들을 설득하여 장례를 치르도록 돕는다. 독특하게 주인공이 이미 사건을 저지른 상황에서 극이 시작되는데, 불변을 원한 구식 영웅의 죽음과 그 앞에 남은 ‘이긴 자’들의 편협하고 초라한 진면모, 변화와 관용을 중시하는 또 다른 영웅의 부각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덕목을 갖춘 인간 정신의 부활을 암시한다.

트라키스 여인들
엇갈릴 수밖에 없는 여성과 남성의 서로 다른 세계를 첨예하게 그린 작품으로, 지극히 여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여인이 남편의 사랑을 되찾으려 처음으로 내린 결정이 야기하는 엄청난 파국을 다루고 있다. 남편 헤라클레스가 이국에 종으로 끌려갔다가 그곳의 왕을 쓰러뜨리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먼저 보낸 포로들 가운데 이국의 공주였던 여인이 그가 고른 새 신부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독약을 사랑의 묘약으로 착각해 그의 옷에 묻혀 보내고, 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끔찍한 고통에 휩싸이게 되며 사실을 알게 된 데이아네이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다.
기원전 책을 읽다니.
책을 읽으면서도 신기한 기분이다.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강연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엄청난 진실이 숨겨져 있는 내용이니만큼 극 중 대사에서 긴장감이 넘친다.
비밀이 숨겨져 있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짜릿했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주변인물들을 수소문해나간다.
처음 사건의 단서를 주는 것은 처남인 크레온이다.
대화에서 크레온은 라이오스를 죽인 것은 도적들이라고, 다수의 손으로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이디푸스는 '그 도적은' 이라며 단수로 말을 받는다.
또한 선포할 때에도 오이디푸스는 범인이 다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범인을 단수와 혼용하여 말한다.
이렇듯 오이디푸스의 입에서 나오는 복선은 더욱 이야기를 고조시킨다.
특히 경악스러운 복선은 이 대목이다.

36 그러니 나는 이것을 위해, 마치 내 아버지의 일인 양 싸워나갈 것이고, 그 살인을 저지른 자를 잡고자 찾으며 모든 곳을 뒤질 것이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를 만나고 놀라 침묵하며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분노해 그를 비난하고 모욕적인 말을 한다.
화가난 테이레시아스도 저주의 말을 퍼붓는데, 사실 그 말은 이야기의 진실이자 복선이다.
테이레시아스의 '지금은 제대로 보지만 그때는 어둠만을 보게 될 그대를'이라는 대사는 진실을 알게 된 후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복선들이 너무 잔인해서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비극이 계속 쌓인다.

테이레시아스에게 범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부인인 이오카스테에게 라이오스에 대해 물어본다.
피살이 일어난 장소가 자신이 한 노인을 죽였던 장소와 일치하자 놀라 '그가 어떤 체격이었는지, 젊은 힘이 얼마나 절정에 다다라 있었는지를' 묻는다. 
이것은 자신이 죽인 노인이 라이오스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오카스테와 대화를 나누며 결국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범인임을 알게된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은 하나둘 내막을 눈치챈다.
오이디푸스보다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은 진실이 두려워 그 것을 파헤치려는 오이디푸스를 막는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에게 '이 사람이 누구에 대해 말했든 무슨 상관인가요? 신경쓰지 마세요. 공연한 소리를 쓸데없이 되새기려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혈통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제발 그것을 추적하지 말라고 하는 간절함에 가슴이 졸아든다.
오이디푸스를 버린 하인과 대면할 때도 사자가 하인이 준 양자가 바로 오이디푸스라고 말하자 하인은 절규하듯 '파멸 속으로 꺼져 버려라!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라고 소리지른다.
이처럼 진실의 끔찍함에 주위 사람들이 격렬한 저항을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의지를 관철해 앞으로 나아간다.
오이디푸스가 상징하는 것은 자신이 파멸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임을 알 수 있다.
줄거리의 파괴력 때문에 오이디푸스가 단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만 대표되는 것이 아쉽다.

결국 모든 진실을 알게된 오이디푸스는 광란하며 부인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를 찾는다.
하지만 이미 올가미에 매달려 있는 그녀를 보고 그녀 옷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이것은 죽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떤 눈으로 보아야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복선이 회수되어 오이디푸스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크레온에게 불경한 자신을 이 땅에서 쫓아내길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 딸들을 걱정해 그에게 부탁한다.
신의 저주같은 신탁을 받아 자신은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다.
하지만 이런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오이디푸스의 자식들, 특히 오이디푸스가 걱정하는 딸들도 순탄치 않은 운명을 타고 났을 것이라는 것이 예상되어 오이디푸스가 더욱 안타깝다.
오이디푸스는 그동안 읽었던 모든 책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105 나를 얼른 이 땅 밖으로 이끌어 내 주시오.
 이끌어 내 주시오, 오, 친구들이여, 가장 저주받고 크게 파멸한 인간들 가운데서도 신들께 가장 미움 받는 나를.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자의 서사시가 아닌 수사극으로써 진행되어 긴장감을 주는 방식이 굉장히 훌륭했다.
대사가 가진 의미와 역할을 알게될 때마다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으나 한편으로는 연민이 싹텄다. 
그리고 마지막장의 삶의 다변성을 이야기하는 코로스의 대사가 주는 교훈에 소름이 끼쳤다.

116 그러니 필멸의 인간은 저 마지막 날을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할 수 없도다,
 아무 고통도 겪지 않고서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에는.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비극이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싸우다 서로의 손에 한날 죽는다. 그 중 폴뤼네이케스는 아르고스의 사위가 되어 테바이를 침공했기 때문에 외삼촌인 크레온이 장례를 금한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고 크레온의 명령으로 돌무덤에 갇혀 자살한다.
동생 이스메네가 살아 남긴 했지만 홀로 살아 남은 자로서의 비극이 또 시작된 셈이다.
결국 크레온의 아들과 부인까지 죽은 것을 보면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안티고네'에서도 삶의 다변성을 이야기하는 대사가 눈에 띈다.

143 왕이시여, 필멸의 인간은 그 어떤 일이든 일어나지 않으리라 맹세할 수 없습니다.
 나중의 숙고가 처음 생각을 거짓으로 만드니까요.


'아이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삶의 다변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아이아스는 이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테네의 덫에 걸려 수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자가 하는 대사이기에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241 길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은 모든 숨겨진 것들을 드러내고, 또 드러난 것들을 숨기오.
그리하여 어떤 일도 예상 밖의 것이 아니며, 무서운 맹세도 굳고 굳은 가슴도 극복된다오.


각주를 읽다보면 좀 귀찮은 부분이 있다.
반복된 설명은 앞의 각주를 참고하라는 설명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트라키스 여인들'에서 '헬리오스'에 대한 각주를 '「오이디푸스 왕」660행 각주 참고.'라고 적는다.
62페이지의 660행을 찾아가면 그 각주는 '태양신'이라 적혀 있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을 쓰는지 정말 모를일이다.
어차피 반복되는 각주는 이렇게 신에 대한 반복된 정보가 대부분이라서 각주의 길이도 짧기 때문이다.


'트라키스의 여인들'은 헤라클레스와 그의 아내 데이아네이라의 이야기다.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이라의 실수로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독자의 마음은 반대로 데이아네이라에게 연민이 가고 헤라클레스에게는 분노하게 된다.
데이아네이라의 마음은 선의로 가득하고, 헤라클레스의 마음은 이기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는 부인이 있음에도 이올레를 향한 욕망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그 여인을 신부로 맞이하려 집으로 보낸다.
그럼에도 데이아네이라는 화를 내긴 커녕 여인에게는 친절을 베풀고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되찾으려 사랑의 묘약을 옷에 적셔 그에게 보낸다.
그런데 그 묘약이 독약이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악의도 없었으나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는 물론 아들 휠로스에게조차 분노와 혐오을 당한다.
심지어 휠로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설사 내가 죽을 때 네가 함께 죽어야 한다 해도,'라는 말을 듣는데도 어머니만을 힐난한다.
결국 헤라클레스의 소식을 들은 데이아네이라는 자살을 하고 만다.
어머니에게 내뱉는 휠로스의 대사가 너무 잔인하다.
헤라클레스의 맹목적인 영웅화를 이해할 수 없다. 

343 가게 놔두시오. 떠나는 그녀를 바람이 밀어주기를, 내 눈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공연히 어머니라는 이름의 위엄을 지닐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전혀 어미답게 행동하지 않은 여자라면.
 그러니 평안히 가게 두세요. 내 아버지께 그녀가 주고 있는 즐거움을 그녀 자신도 차지하기를!


헤라클레스는 휠로스에게 이올레를 아내로 삼으라 말한다.
인간들 중 다른이가 내 옆구리 가까이에 누웠던 그녀를 네 대신 차지 하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
이 것은 아들을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자신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후손을 통해서 여인을 가지려는 욕망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추한 모습을 보이고 나서야 휠로스는 아버지의 말에 반대를 한다.
독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대사다.

367 아아, 병든 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할 짓이 못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이를 또 누가 보고 견딜 수 있으랴?


어쨌든 헤라클레스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영웅의 안타까운 죽음임에도 그가 죽는 순간에 악이 해소되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후련하기까지 하다.
사실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작가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그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을 이렇게까지 영웅성이 없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감상이 되는 것은 기원전 작가의 시각과 현시대를 사는 독자의 시각의 차이때문일까.
제목이 '트라키스 여인들'인 것도 의아하다.


고전은 어렵지만 작품해설이 있어 더 재미있기도 하다.
기원전 극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보통날

책소개

유쾌한 이야기꾼 김영하의 첫 장편소설!

1995년 계간지 '리뷰'에 단편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한 이후, 지금 세대를 대표해온 소설가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죽음의 미학을 매혹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비범하고 충격적 소설가의 탄생을 알린 첫 장편소설이다. 활달하고 대담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참신하고 경이로운 작품 세계를 만들어온 저자의 소설가로서의 첫걸음을 확인하게 된다. 판타지, 컬트, 포르노그라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타인과의 연대에 무능하여 끝없이 고독과 단절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을 명쾌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서늘할 정도로 무관심한 문체가 우리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줄거리(스포일러)

'나'는 의뢰인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여행을 떠나고 의뢰인의 이야기로 소설을 쓴다.
C는 동생 K의 여자인 유디트와 관계를 맺는다. K는 유디트에게서 C의 로션 냄새를 맡는다. K는 항상 형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 늘 북극에 가고 싶어하는 유디트는 생일에 C에게 고향인 주문진에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폭설로 인해 차 속에 고립되는데 섹스 후 잠든 C를 두고 유디트는 사라진다. 유디트는 '나'를 만나 가스를 이용해 자살한다. 유디트의 자살 이후 K는 충격을 받아 폭주하지만 C는 태연하다.
한편, 비엔나에서 '나'는 홍콩에서 여행온 여자를 만나 함께 피렌체로 간다. 그녀는 홍콩의 바에서 마네킹 일을 하다 남자에게 팔려가 성적 학대를 당하고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미미는 퍼포먼스 외에는 죽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조언으로 C의 비디오아트에 자신의 퍼포먼스를 담는다. 미미는 자신의 퍼포먼스가 담긴 테이프를 본 후 '나'의 도움을 받아 욕조에서 자살한다.



정말 난감한 소설이다.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건가 싶고 남성판타지에 확 질리다가도 신선한 전개에 계속 읽게 된다.
그런가하면 또 금세 포르노가 등장해 짜증나는데 너무 술술 읽혀서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틈에 다 읽었다.
모든 책을 정독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속독하듯 빨리 읽어 버린 것은 책이 얇기 때문인지 내용에 질려서 훑듯 읽어버린 탓인지 김영하작가의 책이 워낙 술술 읽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김영하 작가님을 좋아하는 것은 작가 김영하가 아니라 지식인 김영하, 강연자 김영하, dj이자 방송인인 김영하인가?
냉철한 문체를 좋아하지만 항상 이 남성판타지가 문제다.
지금껏 내가 읽은 바로는 작가님은 진짜 쓰고 싶은 대로 맘껏 쓴다.
그래서 파격적이고 대담하면서 신선한 것인데, 거기에 성판타지가 빠지질 않는다.
난 그게 또 너무 싫은 거다.
적당함이 없는 폭력적인 이야기에 학을 떼면서 겨우겨우 읽는다.
이렇게 고통받으면서도 작가님 책을 읽는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가진 매력이 있는건지 작가님을 향한 팬심인지.

이 책을 읽으면 정신이 맨몸으로 폭력에 노출된 기분이 든다. 아주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다.
남성판타지는 왜 이리도 여성에게 폭력적일까.
이렇게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캐릭터를 보며 내가 충격 이외에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아 이런 난폭한 책을 읽기에 난 아직 멀었다.
멀었고 아마도 영원히 멀겠지.

줄거리를 요약하려고 책을 다시 펴는 것이 두려웠다.
문득 궁금하다. 이 책을 쓸 당시 작가님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폭주했는지 몰라도 지금 스스로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할지.
이런 하드보일드는 무라카미류 이후로 다신 안볼줄 알았는데.
그러고보니 재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라카미류와 많이 닮았다.

책 내용 중 K의  일시적 사시현상에 대한 글이 나온다.
긴장이 풀리면 눈의 근육이 느슨해져서 사시가 된다는 설명을 읽고 있자니 김영하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시는 건 본 적 없지만 어쩐지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대사가 너무 작가님답다.

45 "우리 식구 빼고는 아무도 몰라.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눈에 힘을 주고 있거든."
 "그럼 피곤하지 않아?"
 "익숙해져서 괜찮아. 어차피 세상은 피곤한 거잖아."


제목은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법정에서 마약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말한 변론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제목이 과하게 좋다.
아무리봐도 이 소설의 판매량은 제목이 다했다.

별에서 온 아이 보통날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든다.
펭귄클래식판으로,
표지그림은 「투명화 ― 머리와 날개 달린 말」프랜시스 피커비아, 1928년 작.

책소개

가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짧은 소설들!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별에서 온 아이』. 다양한 형식을 넘나들며 유려한 필력을 보여주는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 1880년대 후반과 1890년대 초반에 출간되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집을 묶었다. 이안 스몰은 서문을 통해 와일드과 삶과, 그의 소설에 대한 문화적ㆍ문학적 배경 및 복잡한 해석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와일드의 작품은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장르를 진지하면서도 파괴적인 태도로 변형한다. 그의 작품에서 악은 기존의 사회적 가치들이 얼마나 부패해 있고 빈약한지를 폭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가치의 본질을 예리하게 비판하며, 그 가치가 어떻게 사회적 응집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작품집에는 동화, 괴담, 풍속희극을 아우르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재치와 감성을 결합시키면서 복잡한 도덕적 문제를 탐구하는 와일드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짧은 작품들이다. <행복한 왕자>나 <나이팅게일과 장미꽃>과 같은 단편들은 조건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애잔한 슬픔을 선사한다.

[엘리트2000 제공]


목차

서문

I. 행복한 왕자
행복한 왕자
나이팅게일과 장미꽃
자기만 아는 거인
헌신적인 친구
비범한 로켓 불꽃

Ⅱ. 석류나무 집
어린 왕
공주의 생일
어부와 그의 영혼
별에서 온 아이

작품해설 / 오스카 와일드, 예술과 현실 그리고 아름다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간략한 줄거리(스포일러)

행복한 왕자
살아있을 때 행복했던 왕자는 죽고 동상이 되어 나라의 추악함과 비참함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집트로 가던 중 잠시 쉬어가는 제비에게 부탁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보석과 금박을 나누어 주는데, 끝내 추위에 제비가 죽고 만다. 초라해진 조각상은 철거되고 작은 새와 행복한 왕자는 천국에 가게 된다.

나이팅게일과 장미꽃
소년은 사랑하는 여인과 춤추기 위해 붉은 장미꽃이 필요하지만 자신의 정원에 없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 것을 본 나이팅게일은 진실한 사랑을 위해 달빛 아래에서 장미나무의 가시를 심장에 박고 노래를 부른다. 붉은 장미꽃을 피우고 나이팅게일은 죽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소년은 신이나 장미꽃을 들고 여인에게 간다. 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보석을 받은 여인에게 거절당하고 사랑이 쓸모없다 말한다.

자기만 아는 거인
아름다운 거인의 정원에 아이들이 들어와서 놀다가 7년만에 돌아온 거인에게 쫓겨난다. 그 후로 정원은 늘 겨울이다. 어느 날 정원에 들어온 한 작은 아이가 나뭇가지에 손이 닿지 않는 것을 보고 거인은 마음이 녹아 아이를 안아 올린다. 그것을 본 다른 아이들도 정원에 찾아와 정원에 다시 봄이 온다. 거인이 늙어 다시 만난 작은 아이는 예수님이 되어 거인을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
 
헌신적인 친구
사랑보다 헌신적인 우정이 고귀하다고 말하는 물쥐에게 홍방울새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방앗간 주인은 정원을 키우는 한스에게 진정한 친구의 헌신을 강요하며 꽃과 열매를 빼앗아간다. 손수레를 준다는 말로 한스를 부리기 시작해 한스는 모든 시간을 방앗간 주인의 일을 하는데 쓰게 된다. 폭풍우 치는 날 방앗간 주인의 아들이 사다리에서 떨어지자 방앗간 주인은 손수레의 보답으로 한스에게 의사를 데려오라 한다. 결국 한스는 웅덩이에 빠져 죽고 방앗간 주인은 낡은 손수레를 처리하지 못해 손해라고 말한다. 물쥐는 교훈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범한 로켓 불꽃
로켓불꽃은 자신의 비범함을 뽐내며 다른 불꽃들을 무시한다. 왕자의 결혼식 축하 불꽃이지만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왕자의 아이가 죽는 상상을 하고 눈물을 흘린다. 열기구가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조언하지만 내 판단에 의해 울수 있다며 눈물을 흘리다 젖어버려서 폭발하지 못한다. 결국 불량이라고 버려져 한 소년에게 불쏘시개로 쓰여 대낮에 아무도 모르게 터지게 된다. 로켓불꽃은 끝까지 자신의 비범함을 이야기하며 꺼진다.

어린 왕
염소지기를 아버지로 알고 자란 어린 왕은 왕위를 계승하고 궁전의 아름다운 것에 열정을 보인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수척한 직공들과 창백하고 병색 짙은 아이들이 착취 당하며 짜고 있는 옷이 어린왕을 위한 금으로 만든 옷이라는 것을 알고 울며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잠이 들어 꿈속에서 노예 수백명이 착취 당하며 목숨과 바꿔 건져 올리는 진주가 어린 왕의 홀을 장식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울며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잠이 들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본다. 죽음의 신이 탐욕의 신에게 그들을 달라고 하지만 탐욕의 신은 자신의 하인이라며 주지 않는다. 죽음의 신은 학질과 열병과 역병으로 사람들을 다 죽이고, 어린 왕은 그 사람들이 왕관에 장식할 루비를 찾고 있었음을 알게되어 울며 잠에서 깨어난다. 어린왕은 금으로 된 옷 대신 염소지기의 옷을 입고 대관식에 참석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받아 경이로운 모습을 보인다.

공주의 생일
스페인 공주의 생일에 공연을 하게 된 난쟁이는 기괴하고 추한 모습에 웃음거리가 된다. 공주는 공작 부인을 놀리려고 백장미 한송이를 난쟁이에게 건내고 다시 공연할 것을 명령한다. 공주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난쟁이는 공주님을 숲으로 데려갈 생각을 하며 기다리던 중 거울을 보게 되고 자신의 끔찍한 모습에 절망에 빠진다. 시종이 쓰러진 난쟁이를 보고 마음이 찢어져 버려 다시 춤을 추지 않을거라 말하자 공주는 앞으로 나를 즐겁게 해 줄 사람들은 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라 외치고 정원으로 나간다.

어부와 그의 영혼
어부는 그물에 잡힌 아름다운 인어에게 반해 언제든 부르면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약속하고 인어를 놔준다. 인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영혼을 가지고 있어 사랑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마녀에게 영혼의 육신인 그림자를 잘라낼 수 있는 칼을 받아 그림자를 잘라낸다. 그림자는 바다 속으로 들어간 주인을 지혜의 거울과 부자가 되는 반지로 유혹하지만 어부는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맨발로 춤을 추는 아름다운 소녀의 이야기에 매혹당한 어부는 해변으로 돌아오고 어부의 영혼이 다시 들어간다. 그림자의 말에 따라 도둑질과 폭력, 강도질을 하게 된 어부는 후회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려 하지만 다시 영혼을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해변에서 매일 인어를 부른다. 해변으로 밀려온 인어의 시체를 본 어부는 마음이 찢어져 영혼과 하나가 되어 파도속에서 죽는다.

별에서 온 아이
가난한 나무꾼은 별이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줍게된다. 별에서 온 아이는 아름답지만 사악하고 이기적이어서 다른 아이들을 경멸하고 부려먹는다. 어느날 거지 여인을 보고 돌을 던지며 괴롭히는데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경멸하며 꺼지라고 한다. 여인이 사라지고 아이는 두꺼비 같은 얼굴과 뱀의 몸을 갖게 되어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찾아 나선다. 삼년 동안 사람들에게 경멸과 모욕을 당하다가 한 마술사 노인에게 팔려가 백금과 황금, 붉은금을 찾아 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덫에 걸린 산토끼를 구해주고 도움을 받아 금을 찾지만 나병환자에게 금을 베풀고 마술사에게 맞는다. 마지막으로 찾은 붉은금 마저 나병환자에게 건내주자 병사와 신부와 귀족들이 나와 왕자님이라며 아이를 맞이한다. 아이는 어머니를 만나 잘못을 빌고, 어머니는 왕비로 나병환자는 왕으로 변한다. 아이는 궁전으로 가 도시를 다스리지만 고생을 너무 심하게 했기 때문에 삼년이 지나 죽는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는 별개로 이 책은 정말 좋았다.
'행복한 왕자'를 정말 좋아하는데, '나이팅게일과 장미꽃'도 환상적으로 좋았다.
난 단편집은 별로 안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취향이 변했나.
동일한 작가의 책을 여러권 읽다보면 단편집이 더 좋은 경우가 꽤 있다.

외국동화에서 흔히 느껴지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이질감이 심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데, 거기에 플롯과 캐릭터의 자유로움이 더해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헤르만 헤세의 환상동화집이 생각나기도 하면서 묘하게 비극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작가의, 같은 결의 작품인데도 왜 이렇게 호불호가 갈릴까 생각해보면 동화이기 때문인 것같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상황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사랑의 위대함에 쉽게 감화되기 때문이다.
서문에서는 오스카 와일드가 동화의 보수주의적 도덕적 기능을 전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화의 보수주의를 파괴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개성이 이 책의 핵심이다.

'행복한 왕자'의 제비는 갈대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이동 시기를 놓쳐 무리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행복한 왕자와 또 사랑에 빠져 부탁을 들어주느라 결국 이집트로 가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어릴 적엔 왕자에게 이입해서 슬펐는데, 커서 읽어보니 제비가 안타까워서 슬펐다.
이 얼마나 로맨틱한 제비인지.

42 "안녕히 계세요, 왕자님. 왕자님 손에 입 맞추어도 될까요?"
 "이제야 결국 이집트로 간다니 기쁘구나, 작은 제비야.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사랑하는 제비야, 이제는 내 얼굴에 입을 맞추려무나."
 "제가 가는 곳은 이집트가 아니에요. 저는 죽음의 집으로 간답니다. 죽음은 잠의 형제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나서 제비는 왕자의 입술에 겨우 입을 맞추고는 발 아래로 툭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그 순간 쩍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조각상 안에서 들려왔다. 납으로 된 왕자의 심장이 두 동강 나버린 것이다. 차가운 서리가 무섭게 내린 날이었다. <행복한 왕자>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의 나이팅게일도 소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정확하게는 소년의 진실한 사랑, 사랑 그 자체를 위한 희생이다.
붉은 장미꽃을 얻어야 여인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소년을 위해 나이팅게일은 장미나무에 심장을 찔리고 노래한다.
하지만 새의 죽음으로 붉은 장미꽃을 얻게되었음에도 소년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이야기는 허무하게 끝이 난다.
진실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바친 새의 헌신과, 꽃보다 보석이 더 좋다는 여인에게 분노해 사랑의 부질없음을 말하는 소년의 대사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로써 나이팅게일의 죽음에 대한 가치가 뚝 떨어지는 것이 굉장히 충격적이다.
나이팅게일이 꽃을 피우는 장면이 굉장히 잔인하면서도 황홀하기 때문에 더욱 허무하고 비극적이다.

51 장미나무는 가시에 몸을 더 누르라고 소리쳤다.
 "더 눌러야 해, 작은 나이팅게일아. 아니면 장미꽃이 다 피기도 전에 새벽이 올 거야."
 그래서 나이팅게일은 몸을 가시에 더 깊숙이 눌렀다. 마침내 가시가 나이팅게일의 심장을 찔렀다. 나이팅게일은 온몸을 관통하는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 고통이 커질수록 노랫소리도 더 커져 갔다. 사랑은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사랑은 무덤 속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팅게일과 장미꽃>


이 외에도 동화는 등장인물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헌신적인 친구'의 한스는 방앗간 주인을 위해 폭풍우 속에서 웅덩이에 빠져 죽고, '공주의 생일'의 난쟁이는 자신의 괴물같은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찢어져 죽는다.
'어부와 그의 영혼'에서는 사랑하는 인어가 죽자 어부의 마음도 갈갈이 찢겨 죽는다.
동화임에도 굉장히 비극적이고 자극적이다.
등장인물이 죽지 않는 동화라도 그 내용의 잔인함 때문에 어린아이가 읽기에 부적절하다.
진정으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도 느낄 수 있다.
'자기만 아는 거인'에서 아이들은 봄과 같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원을 나누었을 때 거인은 아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 보상을 받는다.
또, '어린왕'과 '공주의 생일', '별에서 온 아이'에서 주인공인 아이들은 모두 아름답고 고귀한 신분으로 등장한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헌신적인 친구'다.
헌신적인 우정에 대한 비판을 보며 김영하 작가님이 친구에 대해 강연한 내용이 떠올랐다.
친구와의 우정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가?
생각해보면 가장 내 인생의 우선순위와 상관없이 시간을 쏟은 건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의 설정과 대사를 통해 작가의 심중을 엿보면 실제 작가 인생의 굴곡이 떠오른다.
'행복한 왕자'와 '나이팅게일과 장미꽃', '어린 왕'에서 숭고한 희생과 정신적 사랑을 보여주지만 '어부와 그의 영혼'을 보면 육체적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적나라하게 시대의 모순을 보여주며 동화속에 욕망과 허무를 담는다.
슬픔을 담은 대사에 그의 비극적인 삶이 겹쳐진다.

120 "……그대의 꿈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마라. 이 세상의 고통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이 세상의 슬픔은 한 사람이 느끼기에는 너무 무겁다." <어린 왕>

206 "맞아, 대부분이 몇몇 사람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주 적은 양을 나누어 가지지. 세상은 불공평해. 슬픔을 제외하고는 평등하게 나눠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별에서 온 아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는 전혀 다른 씁쓸함이 남는다.
소설의 퀄리티의 대한 조금의 의구심도 없이 오로지 이야기가 남긴 잔상에 대한 것이다.
이 단편집을 먼저 읽었더라면 오스카와일드를 그렇게 혹평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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