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오롤라) 보통날




책소개

고딕의 전통 위에서 빛나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공포 소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품집『지킬 박사와 하이드』. 스티븐슨의 빛나는 독창성을 보여주는 고딕 공포 소설들을 만날 수 있다. 계급과 인간의 범죄 행위,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의 의미를 다룬 로버트 미갤의 서문과, 소설의 과학적인 배경 및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이중적인 인간성 발현에 대한 에세이를 함께 수록하였다.
공포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분열된 자아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작품이다. 선과 악을 대표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통해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야 하이드의 진짜 정체성을 밝히면서, 인간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악마적 성향을 보여준다.
<오랄라>와 <시체 도둑>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출간된 크리스마스 소설이다. <오랄라>는 흡혈귀와 그로 인해 저주받은 한 가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시체 도둑>은 악명 높은 버크와 해어의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이 책은 필히 표지 사진을 넣고 싶었다.
펭귄클래식은 작품 해설과 서문이 좋아서 좋기도 하지만 표지를 참 잘 뽑는다.
짐 댄디의 「손과 나선무늬의 반쪽 얼굴」이라는 그림인데,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서 자세한 설명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너무 어울리는 표지라 편집자의 센스가 너무 좋다는 것.
소름끼치는 공포소설임을 강조하면서도 유치하지 않고 세련됐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모든 서적 표지 중 단연 최고다.



서문에서 이 소설로 인해 런던의 이미지가 지금의 이미지로 굳어지게 됐다고 밝힌다.
후대의 공포소설에 영향을 준 선구적인 작품이며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통한다.
실제로 소설을 읽으면 알려진 것보다 내용이 풍부해서 이런 대단한 수식어 이상으로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 알 수 있다.



우선, 소설을 읽으며 그 동안 내 지식은 무엇이었나, 새삼스레 얕은 내 상식에 놀랐다.
하이드라는 괴물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을 단순히 어떤 연구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뮤지컬 내용처럼 아버지를 위한 연구의 과정중의 실수라고.
의외로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지킬박사는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진 존경받는 모습과 쾌락을 탐하는 성향을 지닌 자신의 이중성에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고 두 개의 본성을 나누려는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쾌락을 탐하는 성향 때문에 이중생활을 하던 중 죄책감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심에 각각의 본성을 해방하려는 욕망덩어리라는 것이다.)
지킬박사가 하이드라는 본성을 깨워 결국 그 인격에 잠식당한다는 내용은 사실 연구를 실패한게 아니라 반은 성공한 거 아닐까.
어쨌든 그렇게 해방하고 싶던 본성의 괴물로서 살면서 충분히 즐겼고, 결국 하나의 인격으로 키워내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킬은 본인이 추구했던 쾌락은 품위 없는 처신 정도였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하이드로 사는 쾌감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본인의 연구를 마지막까지 그럴듯하게 변명하는 지킬의 위선적인 모습은 캐릭터의 본성을 철저하게 보여준다.
약의 성질로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다는 설명 또한 지킬의 이중적인 성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은 지킬박사의 친구인 어터슨 변호사를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결국 지킬박사는 사라지고, 어터슨은 래니언박사의 글을 먼저 읽어보라는 지킬의 편지를 받으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래니언 박사의 이야기'에서 지킬이 하이드임이 밝혀지고, 마지막으로 '헨리 지킬의 고백'에서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소설은 내용이 짧은 편인데, 내용이 빈틈없어 꽉 차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다.



소설 속의 런던은 음침하고 안개낀 미스테리한 장소로 설명된다.
이는 심리적인 요소를 강하게 반영하는데, 누구의 집으로 묘사 되냐에 따라 집의 느낌이 180도로 바뀐다.
배경의 설명 또한 굉장히 입체적이라 마치 그 장소를 바라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이드가 처음 발견된 건물의 설명이다.


  그곳에 음산한 건물 한 채가 삼각형의 지붕을 거리로 내민 채 서 있었다. 그 2층 건물은 창문도 없이 아래층에 난 문 하나가 전부였고 위층은 그저 빛바랜 벽뿐이었다. 매우 단조로운 그 건물에는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초인종도, 두드리는 손잡이도 없는 문은 여기저기 페인트가 들뜨고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p.29



그리고 같은 건물인 지킬의 집을 설명하는 부분은 이렇다.


  부와 안락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 집, 현관문 위의 작은 창문을 제외하고는 어둠에 잠겨 있는 그 집의 문 앞에 멈춰 선 어터슨은 문을 두드렸다. p.46



어터슨은 하이드가 노신사를 지팡이로 때려 죽인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몇 년 전 자신이 지킬에게 선물한 지팡이 임을 알아챈다.
그 후 마차로 집으로 가는 길의 묘사에도 심리 반영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쪽에선 저녁이 깊어질 무렵과 같은 어두움이었다가, 저쪽에선 마치 큰 화재의 기이한 불빛처럼 선명하게 타오르는 갈색의 빛이 빛나기도 했다. 그러다 또 잠시 안개가 걷히고 가느다란 한 줄기 아침 햇살이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기도 했다. p.56



지킬박사는 오랜 연구 끝에 실험을 성공하고 하이드로 변신을 하게 된다.
변신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통증과 공포를 동반하는데, 한차례 괴로움이 지나고 나자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로써 그 동안 이중생활로 쌓여있던 답답함이 해소되고 점점 쾌락에 빠져든다.



지킬이 만들어낸 에드워드 하이드는 순수하게 악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게다가 충동적이고 참을성도 없어서 결국 존재를 사람들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그 성격이 형상화 되어 외모 또한 혐오와 공포를 주기 때문에 한 번 본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준다.
개인적으로 하이드에 대한 설명이(외모적으로든 성격적으로든)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진진하다.


  "분명히 뭔가 더 있어. 그게 뭔지 알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자는 도무지 인간 같지가 않았어! 원시 야만인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옛날이야기의 펠 박사 같은 것? 아니면 밖으로 배어 나와 육체까지 변형시킨 사악한 영혼의 발현일까? 후자인 것 같다. 오, 불쌍한 내 오랜 친구 헨리 지킬, 내가 악마의 모습을 한 얼굴을 보았는데 그가 바로 자네의 새 친구라네." p.45

 

하이드로 변신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하이드는 점점 강해지게 된다.
처음 변신할 때보다 키가 자랐으며 피가 더 왕성하게 흐르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던 중 지킬은 약의 도움 없이 자신도 모르는 새 하이드로 변신하게되고 큰 충격을 받아 하이드로 변신하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이 장면에서 작가의 필력이 너무 좋아서 나도 지킬만큼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아마 족히 30초는 그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어떻게 된 거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심벌즈가 맞부딪쳐 울렸을 때처럼 깜짝 놀랐고 그러면서 가슴 속에서 공포가 깨어났다. 나는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나 거울로 달려갔다. 내 눈과 마주친 모습을 보고 나는 피가 묽어지며 얼어붙어 버리는 것 같았다. p.116



하지만 결국 지킬은 다시 약에 손을 대게 된다.
그 후 하이드가 살인을 저지르고 지킬은 다시 한 번 하이드의 삶을 포기하지만 이미 하이드의 힘은 지킬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으로 커져 있었다.
다시 한 번 약없이 하이드가 되어 위기에 처하게 되고, 래니언의 도움을 받아 지킬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래니언은 충격과 공포로 세상을 떠난다.
하이드는 지킬이 잠이 드는 순간마다 스스로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지킬은 약이 있어야만 지킬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로 지킬은 은둔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찾아온 어터슨과 엔필드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 또한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시더니 곧 비참한 공포와 절망의 표정으로 돌변했다. 창 아래에 있던 두 사람은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지킬은 교수대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이드로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고, 절박함과 긴장과 불면 속에서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갔다.
하이드는 지킬과의 의존관계가 싫었고,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이 괘심했지만 또 지킬이 자살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 생명과 직결된 본능으로 증오하는 마음이 같아지고 더이상 버티는게 힘들어진 지킬은 끝내 자살을 하게 된다.



마지막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컨프론테이션이 머리속에서 bgm으로 깔리며 읽혔다.
컨프롱처럼 극적인 대립은 없지만 지킬 입장에서 쓰인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은 그만큼 대단했다.
사람들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만큼은 원작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원작 만한게 없다 정말.



+
이 책이 한가지 더 좋은 점이 있는데 <오랄라>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흡혈귀 가문의 이야기로 공포소설의 클리셰인 저주받은 혈통 이야기다.
내용 자체도 클리셰 그대로 가문에 대해 모르는 타지인이 들어갔다가 미묘한 분위기와 상황에 의심을 키우다가 흡혈귀에게 물리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와 떠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장교는(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 곳에서 마지막 왕족 혈통의 사생아 딸인 오롤라에게 사랑에 빠진다.
여기서 이 혈통이 근친혼임을 알 수 있는데, 다른 피와 섞인 오랄라가 아닌 흡혈귀인 어머니를 마지막 혈통이라 표현한다.
소설은 병들어 있는 혈통과 폐쇄적인 가문, 아름다운 용모와 강한 체력, 지능의 퇴화로 이 가문을 설명한다.
이런 클리셰 그대로의 내용인데도 고전적이며 묘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
사건의 묘사나 캐릭터 설정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오롤라의 남매인 펠리페는 장교를 저택으로 데려가 처음부터 옆에서 장교를 보조한다. 약간 모자란 모습의 그는 천진난만하고 나태하지만 일만큼은 성실히 임한다.
문득문득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모습도 보여주는데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는 정신박약한 모습에도 장교는 침착하게 대처한다.
어느 날 장교가 그의 순수한 잔인성에 놀라 비난하는 사건이 생긴다. 이 때 펠리페는 장교에게 바로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캐릭터성이 공포심을 점점 키우고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마치 아이처럼 즐겁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내 심금을 울렸다. 그것은 전혀 가공되지 않은 아주 순수한 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다람쥐의 비명 소리가 내 가슴을 쳤다. 난 그때까지 어린아이나 농부들의 잔인함을 많이 복고 들었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은 나를 분노와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p.180



장교는 마당에 있는 정자에서 기둥에 기대 앉아 있는 안주인을 처음 보고 아름다움에 놀란다.
텅 비어 있는 시선을 느끼고 의문을 품지만 혈통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무심하며 아름답고 멍청한 모습은 어느새 장교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위로를 준다고 느낀다.
어느 거친 바람이 부는 날 저택은 불길한 요소들로 가득해 있었는데, 그 날 밤 장교는 충격적인 소리를 듣게된다.
이 날의 분위기나 장교의 기분, 펠리페와 부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둡고 긴장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불쌍하면서도 불쾌한 비명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내가 꿈을 꾼 것이라 생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 비명 소리는 여전히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통의 비명 소리 같았다. 분노에 찬 소리인 것은 분명했다. p.191



그 후 어느 날 장교는 산책에서 돌아와 계단에서 오롤라를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혼의 강력한 힘이 그녀의 눈을 통해 밖을 내다보더니 내 영혼을 정복하여 내 가슴을 감싸고는 노래가 되어 내 입술에서 뛰쳐나왔다. 그녀가 내 핏줄 속에 흐른다. 그녀는 나와 하나가 되었다. p.201



단 한번의 눈맞춤으로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 장교는 몇일간 상사병을 앓고 마침내 마주치게 된 오롤라는 장교에게 떠나라는 말을 한다. 장교는 절망에 빠지지만 오롤라 앞에서 사랑과 열정을 모두 쏟아낸다.
 

  내가 그녀 생각에 빠져 살았다는 것을, 잠이 들어서도 꿈에서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영원히 그녀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내 조국도, 내 언어도, 내 친구도 기쁜 마음으로 부인할 수 있을 것임을 말했다. p. 210



하지만 오랄라에게 떠나달라는 편지를 받게 되고 장교는 두려움을 느끼며 손으로 유리창을 깨고만다.
손목의 상처에서 피가 나자 도움을 청하러 밖으로 나와 부인을 마주치는데, 부인에게 깨물려 피를 빨리며 쓰러진다.
장교는 이에 환멸해 고통스러워하지만 보살펴주는 오롤라의 모습이 다시 사랑을 일깨운다.
하지만 오롤라는 가문의 저주를 이야기 하며 더이상 후손을 만들 수 없다 거절하고 결국 장교는 떠나게 된다.



이 뻔하면서도 매력적인 스토리가 정말 좋다.
소설을 이끄는 묘한 분위기는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을 설레이게 만든다.
그러니까 꼭 <오롤라>가 수록된 펭귄클래식으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