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보통날

하아 읽은지 너무 오래 되서 쓰기가 너무 부담스럽다..

책소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 작가 정유정의 장편소설. 수상 이후 오랜 시간 준비하여 야심 차게 내놓는 소설로, 치밀한 사전 조사와 압도적인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이다. 7년의 밤 동안 아버지와 아들에게 일어난 슬프고 신비로우며 통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리는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두 살 서원, 세상은 그에게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올가미를 덧씌운다. 친척집을 전전하던 끝에 결국 모두에게 버려진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한집에서 지냈던 승환을 다시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다.

소설가이자 아버지의 부하직원이었던 승환에게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서원에게 아버지의 사형집행 확정 소식이 칼처럼 날아들고 서원에게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찍은 잡지 '선데이매거진'이 그를 세상으로부터 내몬다. 서원은 세간의 눈을 피해 승환과 떠돌이 생활을 하며 승환에게 잠수를 배우며 살아간다.

세령호의 재앙으로부터 7년 후, 등대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던 승환과 서원은 야간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청년들을 구조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된 서원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상자를 배달받는다.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소설은 승환이 쓴 것으로 7년 전의 세령호의 재앙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데…

[알라딘 제공]


일단 이 소설을 원작으로한 동명의 영화는 정말 별로다.
영화와 별개로 소설 '7년의 밤'에 관심이 있어 책을 읽는 거라면 굳이 영화는 볼 필요가 없다.


  오영제는 살해당한 아이의 아빠였다. 충돌지점을 향해 폭주하는 자동차였다. 팀장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고 침몰하는 난파선이었다. 두 극점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일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짐작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p.369)


소설은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라는 강렬한 문구의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정유정 작가만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잘 이용하는 작가가 있을까 싶다.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예고편과 후기를 너무 완벽하게 뽑아서 이야기의 시작과 맺음이 참 확실하다.


이야기는 서원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살인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불행한 상황이 묘사되는데 승환을 마지막 동아줄로 생각하고 통화하는 서원이의 감정묘사가 너무 좋았다.

  신호가 떨어졌다. 잠시 후, 느릿하면서도 발성이 분명한 음성이 "여보세요" 했다. 아저씨였다. 단번에 알아차렸다.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데. 목이 꽉 막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목젖안에 무덤이 생겨난 기분이었다. 아저씨는 전화를 끊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p.22)


세령이의 아빠인 영제는 가족에게 집착하고 굴복시키려하는 굉장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으로 나온다.
아내인 하영과 세령의 위에 군림하려하며 학대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너무 무서웠다.
보통의 공포소설이나 스릴러와 다르게 가해자의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라 차마 못읽을 정도로 공포에 현실감이 있었다.
내용이 궁금하긴 한데 너무 무서워서 오영제를 장동건 혹은 너무 무섭지 않게 생긴 악역 배우얼굴로 상상하며 읽었다.


오영제가 딸을 죽인 살인자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무서운 오영제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한 마을을 통체로 없앤 살인마라고 하기엔 현수가 너무 소심한 모습이 아닌가.
결국 오영제가 복수를 위해 현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고 현수는 세령이를 죽인 죗값을 치르려 묵묵히 받아들이는 거라고 스스로 납득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책이 진행될수록 최현수가 더 무서워졌다.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왼팔마비 증상, 그로 인해 야구선수를 그만둬야했던 과거,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 등 말도 못하게 우울하고 정신질환으로 점철된 사람이었다.
정말 이 사람이 그랬구나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세령이를 죽인 스트레스로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죽은 아버지의 꿈을 꾸며 세령이의 시체를 버린 세령호로 밤마다 헤매고 다닌다.
거기에 전직 야구선수답게 큰 덩치와 평소의 소심한 성격까지 더해지면 캐릭터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내용이 내용인만큼 폭력적인 장면이 많은데, 현수는 외향적인 묘사도 폭력적이라 정말 진저리가 날 정도이다.

  살을 쏘는 듯한 시선이 관자놀이에 느껴졌던 것이다. 고개를 돌리자 신발장거울 안에 그 남자가 있었다. 곤두선 머리칼, 미간에서 펄떡거리는 굵은 핏발, 번들거리는 진홍빛 눈자위, 분노로 떨리는 창백한 입술과 팽팽하게 경직된 어깨. 최상사였다. 동시에 현수 자신이었다.  (p.330)


세령의 죽음 이후 스트레스가 심해진 현수에게 왼팔마비 증상이 다시 생기게 된다.
늘어진 왼팔에 피를 내면 힘이 돌아오기 때문에 마비가 됐을 때 상처를 낸다.
언제나 그렇 듯 정유정 작가의 이런 묘사는 시각적인 효과가 굉장하다.

  그는 칼날을 손목으로 가져갔다. 푸릇하고 굵은 정맥이 지나는 곳이었다. 힘 조절이 중요했다. 동맥이나 인대에 닿지 않도록 얕고, 좁고, 빠르게. 칼날이 손목 위를 미끄러지며 살갗이 벌어졌다. 물대포를 발사하는 것처럼, 혈관이 울컥, 울컥, 핏물을 뿜어냈다. 손끝을 타고 시원스레 쏟아져 내렸다.  (p.268)



워낙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은 소설이지만 가장 소름끼치는 장면은 영제가 현수를 미행하는 장면이었다.
꿈속에서 헤매이며 몽유병 증세를 앓고 있는 현수를 미행하던 영제가 병세를 깨닫고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힌트를 얻는 장면.
스스로 파멸해가고 있는 현수에게 가속도를 달아줄 덫을 어떻게 설치할 지 알아내는 장면.
정말 사냥꾼 같다.


소설은 처음부터 비극이었지만 최후의 세령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은주였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건을 지켜보던 승환도 현수가 가장 사랑했던 서원이도 아닌 가장 현수를 뒤흔들 힘이 있었던 아내가.
비록 싸움으로 부부사이가 틀어져있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변화를 느끼고 미심쩍어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자신의 계획을 지켜내야만하는 남편이 무너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인물이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워 모른척 했던 대가로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승환은 이 이야기의 관찰자이자 해설자이다.
오영제가 저지르는 일들을 추적해가는 동시에 현수의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서원을 구하고 현수를 도와주며 승환은 현수의 편에 서있는 듯 보이지만 사건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로써 인물들의 서사가 방해없이 자유롭게 진행된다.
결말에서는 이야기의 끝을 내는 역할을 하면서 단순히 관찰자가 아닌 이야기 속 등장인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중심 인물의 바로 곁에서 사건의 마지막까지 방관자의 위치로 있던 이유는 소설의 결말이 알고 싶어서였음을 서원에게 고백한다.
해설자의 역할에서 마지막에 인물들의 서사로 한 순간에 들어와 버리는 점이 재미있다.


소설의 제목이 7년의 밤인 이유를 현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령이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서원을 살해하려한 그 날 부터 오영제에게 7년 전 밤이 계속 되고 있는 거라고.
서원이와 현수를 동시에 손에 넣을 생각이라고.
참 끔찍한 인간이라고 생각되는 동시에 오영제에게 7년의 밤이 참 끔찍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의 증오라고 할 수 있을까.


오영제는 마지막까지 끔찍한 인간이다.
그는 도망간 아내를 찾아가 죽은 딸의 입관 사진을 보여준다.
아내를 괴롭히기 위해 죽은 딸의 사진을 찍어오는 모습은 아들을 위해 마을 전체를 침수시킨 현수와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상상도 못해본 악질적인 캐릭터이다.


마을 사람들을 수장시키고 만 현수는 스스로를 단죄하기 위해 자살도, 종교도 거부하고 사형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짓을 저지를 거라 말한다.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일지 글로나마 상상해본다.

  현수는 눈자위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목의 힘줄이 툭툭 불거졌다. 피가 심장을 뚫고 솟구쳤다. 호수 한가운데에 갇힌 아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그의 숨통을 갈랐다. 아들이 겪고 있을 공포의 시퍼런 이빨이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p.424)


에필로그에서 서원은 아버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최현수라는 인간의 비극으로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최현수라는 저 거한의 세상은 어째 이리도 좁은 것일까. 영혼은 수수밭 우물에, 삶은 철창에, 주검은 마티즈 운전석만큼 옹색한 관에 갇혀 있었다. (p.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