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보통날

선물받은 책인데 수필이라는 이유로 한참을 묵혀두었다가 최근에야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한 손에 꽉 차는 사이즈의 문고본이어서 휴대성이 좋고 거의 모든 페이지가 단편적이라 이동 중에, 기다리는 중에 읽기가 좋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버전은 여행컬렉션으로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세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트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내가 죽을 때까지 여행할 곳은 사람.”

누적 판매 부수 150만 부,
여행에세이 장르의 지평을 연
이병률 여행산문집 3종을 특별 한정 문고판으로 만나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서점가를 강타했던 <끌림>. 다소 식상하지만 이보다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많은 청춘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하고,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몸살이 나게 했던, 바로 그 <끌림>이 출간된 지 올해로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했다.
이후 출간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함께 기억할 것이다. 작가는 그 사이 더 부지런히 걸었고, 더 오래 헤매고, 결국은 더 깊게 사랑하였으므로, 더 진하게 웅숭깊어졌다. 2015년 여름, <끌림>이 출간된 지 정확하게 10년이 되는 날, 세번째 여행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출간되었다. ‘여행산문집’이라고 하지만 일련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먼저다.

낭만에 목이 말랐던 청춘들은, 매 챕터마다 모서리를 접어두었고, 모서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지도록 낱장은 떨어져 흩어지도록, 표지가 낡도록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수줍은 마음을 전하는 연서(戀書)가 되어주기도 했고, 소중한 친구에게 희망을 실어주는 청춘열서(靑春列書)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끌림>은 피 끓는 청춘이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책장에 한 권쯤은 무심하게 꽂혀 있는, 그런 존재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서점의 여행서 코너에는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먹은 것의 기록에 새로운 감성을 입힌 여행산문집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평생교육원과 사설 교육기관 등에서는 ‘여행작가가 되는 법’에 대한 강의마저 개설되어 스스로 여행지를 기획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취재, 스토리텔링, 사진 촬영에 대한 기술적 테크닉, 심지어 출판사와의 접촉 과정을 통해 출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끌림>의 후폭풍이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서점의 여행서 코너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한 이병률 여행산문집 3종. 150만 독자가 선택한 그 3종 세트를 특별 한정 문고판으로 제작해 세상에 내놓는다. 이제 선물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받아들었으니, 여행가방을 쌀 때마다 주저했던 당신의 여행길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동행할 것이다. 뭐, 여행이 아니면 또 어떤가.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당신이라면, 그 어디라도 그저 행복하다.

끌림(2005) / 개정판(2010)
기존의 정보 전달 위주의 여행서들이 갖지 못한 감성을 전달한 <끌림>은 여행과 사랑, 낭만에 목마른 청춘들의 찬가가 되었고, 여행에세이가 하나의 확고한 장르로 자리잡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최고의 바이블로 손꼽히고 있다.
이병률 작가에게 여행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여정.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지도 위를 서성이게 하는 이 ‘길’의 끌림, 영혼의 울림이다.

앞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럴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며 그러면 된다.
_ 본문 [옥수수 청년] 중에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2012)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다. 또다시 떠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출발점’에 다시 서고, 지도 위에서 경계심을 푼다. 그러고는 ‘사람’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풍경은 달라졌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건 역시 ‘사람’. 작가는 혼자 떠난 여행에서도 늘 ‘사람’ 속에 있었으며, ‘사람’에 대한 따뜻한 호기심과 ‘사람’을 기다리는 쓸쓸하거나 저릿한 마음을 거두지 않는다.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말은 물(水)인 것 같다. 그 다음은 ‘고맙다’라는 말. ‘물’은 나를 위한 말이고 ‘고맙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위한 말. 목말라서 죽을 것 같은 상태도 싫고 누군가와 눈빛을 나누지 않는 여행자가 되기는 싫다.
_ 본문 [31# 그 나라 말을 못해서] 중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2015)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주로 전 세계 100여 개국을 종횡무진 다니며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냈다면, 이번에는 그 국내편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다닌 곳이 서울 경기 충청 강원 경상 전라 제주. 그야말로 전국 8도를 넘나들고 있으며, 산이고 바다고, 섬이고 육지고 할 것 없다. 허름한 시장통에 삼삼오오 모여 국수를 먹거나 작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들꽃들, 어느 시골 골목길에 목줄 없이 뛰어다니는 똥강아지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주위의 풍경들, 그리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 뭔가를 가득 담은 사람들의 표정이 무심한 듯 다정하게 담겨 있다.

알고 있겠지만, 여행은 사람을 혼자이게 해. 모든 관계로부터, 모든 끈으로부터 떨어져 분리되는 순간, 마치 아주 미량의 전류가 몸에 흐르는 것처럼 사람을 흥분시키지.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풍성한 상태로 흡수를 기다리는 마른 종이가 돼.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먼 곳에서, 그 낯선 곳에서.
무작정 쉬러 떠나는 사람도, 지금이 불안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 먼길을 떠나는 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겠다는 작은 의지와 연결되어 있어. 일상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저기 어느 한켠에 있을 거라고 믿거든.
_ [여행은 인생에 있어 분명한 태도를 가지게 하지] 중에서


-출판사 달 / 출처 : 알라딘



책 뒤에 초판이 2015년으로 되어 있어서 초판이라 생각했는데, 문고판의 초판이었던 걸 알고 놀랐다.
발행된지 10년도 넘은 책이었다니.
개정판이어도 초판 인쇄 날짜는 첫 인쇄날짜로 적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내 취향도 아니고, 특히 여행 수필을 별로 안좋아해서 휴대성만 보고 읽은 책인데 생각보다 참 좋았다.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찾아보니 역시나 시인이어서 책에 애정이 더욱 붙었다.
글은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데도 작가가 막상 겪는 일을 보면 또 둔하기 짝이 없다.
여행 수필임에도 여행 중 겪은 에피소드보다 문득 떠올랐을 지나간 일에 대한 기억과 감상이 더 많다.
에피소드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더욱 좋았다.

보통 수필을 읽다보면 권위적인 문장이 꽤 등장한다.
독자에게 어떻게 해야한다는 명령문이 나오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불특정한 타인을 재단하고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싫은 건 'A는 B다.' 라는 개인적인 정의에 닭살이 돋을 때다.
수필이 자기중심적이니 이런 문장은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작가는 때때로 옛연인 혹은 여행 중에 만난 듯한 지나간 연인에 대한 글을 남긴다.
그런데 그 대상이 모두 다른 사람이라 책의 뒤로 갈수록 감흥이 사라진다.
작가는 절절한데 한 두 명이 아니니 읽고 있는 나는 애절하지가 않다.

같은 선상에서 감성적인 글이 좋긴한데 너무 멜로적이다.
1/3 정도 남은 시점부터 연애이야기가 나오면 좀 지겨웠다.
이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문제지만.

책 속에는 좋은 사진이 가득하다.
전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인데, 너무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있어서 그 점에서는 책 사이즈가 조금 아쉬웠다.
물론 소장하고 휴대하기에 딱이라 직접 고른다고 해도 이 사이즈로 사겠지만 말이다.

가장 좋았던 글은 '옥수수 청년'이다.
페루의 기차역에서 옥수수를 본 작가는 계산 전 옥수수를 한입 베어 문다.
계산하려고 하니 옥수수 청년에게 잔돈이 없어 옥수수를 공짜로 받게 된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잔돈을 바꿔 지불하려 했으나 단속 때문에 청년은 이미 사라졌다.
다음날 그 청년을 만난 작가는 돈을 지불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음료를 두 개 사서 나눠 마시고,
다다음날 떠나는 작가를 만난 청년은 옥수수 두 개를 건넨다.
둘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그렇게 마음을 나누었다는 일화.

아 그리고 책에 페이지번호가 없다.
몰랐는데 난 페이지번호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장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맑은 하늘이 쨍 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떼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데
다 걸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더듬더듬 그에게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사방이 십오 킬로미터가 되는 널따란 돌이 있어. 그 돌을 백 년마다 한 번씩 빗자루로 쓸지.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다 닳아 없어지면 그게 '겁'인 거야. 근데 이 생에서 옷깃이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 오백 '겁'의 인연이었던 사람들이나 스칠 수 있는 거거든? 그렇다면 우린 뭘까? 과연 이건 뭘까?」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나는 내가 아는 겁이라는 단위에 대해 더 설명해 주었다. 1천 겁의 인연은, 다음 생에 한 나라에서 태어나게 되고, 2천 겁의 인연은, 다음 생에서 단 하루 동안 같은 길을 가게 된다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