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보통날

책소개

그해 겨울, 성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김훈 특유의 냉혹하고 뜨거운 말로 치욕스런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소설 『남한산성』. 2007년 펴낸 초판 이후 저자가 십 년의 세월을 지나 비로소 털어놓는 ‘못다 한 말’을 담고, 화가 문봉선의 그림을 수록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개정판으로 만나본다. 병자호란 당시, 길이 끊겨 남한산성에 갇힌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소설의 씨줄과 날줄을 이루어, 치욕스런 역사를 보여준다.

1636년 병자년 겨울.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해 오고, 조선 조정은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을 담았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이 더 가치 있다고 주장한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작품은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 최명길 역의 이병헌, 김상헌 역의 김윤석, 인조 역의 박해일, 대장장이 서날쇠 역의 고수 주연의 영화로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청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 임금과 조정이 고립무원 상황에서 47일을 보내야 했던 이야기를 역사 속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굳이 소개할 필요도 없는 스테디셀러 '남한산성'이다.
김훈 작가의 소설 중 '칼의 노래'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는 '남한산성'이 더 재미있고, 심금을 더 울리는 건 '칼의 노래' 쪽이다.
나는 특히 김훈 작가의 서문을 좋아하는데 이 한 줄로 소설을 축약할 수 있다.

6 그 갇힌 성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삽화로 들어간 문봉선 화가의 그림이 기가막히게 좋다.
겨울이 된 남한산성의 메마르고 황량한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거친 질감으로 빈곤한 조선의 신세와 역동적인 청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대비시켜 보여준다.
이 책은 꼭 삽화가 있는 버전으로 구매하길 추천한다.

역사소설이기에 한문체가 빛을 발하고 그게 김훈 작가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매번 버겁긴하다.
이번 책도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천천히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끝에 낱말풀이가 있다...? 미주가 있었다고!
이렇게 차례가 중요하다.

청군이 임진강을 건너 조정은 파천을 결정한다.
이에 삼정승, 육판서, 비국당상들이 흐느끼며 말하지만 이 작가의 글은 어떤 상황에도 감정에 휩쓸리는 법이 없다.
역시 문장이 좋다.

23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앞을 막아선 채 죽어서 그 충절을 후세에 전하리라는 말은 우뚝하였으나 적들은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유독 좋았던 파트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뱃사공'이다.
뱃사공에서 김상헌은 형 김상용의 급보를 받고 임금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간다.
김상용은 일흔 다섯살의 원로지만 '나는 빈궁과 대군을 받들어 강화로 간다. 그리 되었으니 그리 알라.'고 말한다.
후에 강화에서는 청군이 상륙하자 '당면한 일을 당면하려 한다.'고 말하고 화약 더미에 불을 질러 자결한다.
이 인물이 참 좋았다.
소설 속의 모든 캐릭터가 자신이 맡은 역할과 임무를 다하는데 유독 김상용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던하고 순조로워서인지도 모르겠다.
김상헌은 송파나루에서 한 뱃사공을 만난다. 마을에 혼자 남은 뱃사공에게 왜 남아있냐고 묻자 청병이 오면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볼까 한다는 답을 듣는다.  
김상헌은 탄식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하지만 남겠다는 뱃사공을 결국 죽인다.
백성에게 너그럽고 군병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인물이지만 늙은 백성을 죽이며 눈물을 흘린다.
거대한 폭력에 쫓기며 살고자 살리고자, 살려는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이 쓰리다.

52 …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이었던가……. 아침에 대청마루에서 남쪽 선영을 향해 울던 울음보다도 더 깊은 울음이 김상헌의 몸속에서 끓어올랐다. 김상헌은 뜨거운 미숫가루를 넘겨서 울음을 눌렀다.이것이 백성이로구나. 이것이 백성일 수 있구나.

수어사 이시백은 얼어 죽어가는 군병들을 위해 가마니를 성첩에 올려 뒤집어쓰게 한다.
내행전에서는 그 가마니를 굶어 죽어가는 말의 먹이로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체찰사 김류는 말이 군사의 핵심이며 군병은 그 뜻의 힘으로 견딜것이고 짐승은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에 김상헌은 나누어 주기는 쉽고 도로 빼앗기는 쉽지 않다며 인심을 다치게 할 것을 염려한다.
김류는 결국 가마니를 내려 말에게 먹인다.
그리고 다시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군병들은 성첩에서 얼어죽는다.
군병들은 겁 없이 영의정을 조롱하고 이죽거렸지만 김류는 벌을 주지 않는다.
그 날 저녁 김류는 수어사 이시백을 체포해 남문 앞을 지키지 못한 것을 탓하며 곤장을 때린다.
이 어이없는 순환을 알면서도 고리를 끊을 수 없어 대신 영리하게 대처했던 수어사에게 곤장을 드는 것이 과연 김류의 마음을 삭여줬을지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권력 아래 있는 사람들이 권력자의 화풀이 대상인 건 분명히 알겠다.
현실의 고단함을 겪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탁상공론으로 낸 결론을 다시 고단한 자들이 지키고 고통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 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논쟁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전(戰)과 화(和)이며 의(義)와 이(利)이고 이념과 현실의 대립이었다.
각자의 신념과 명분이 있기에 더 치열하고 흥미로웠다.
김상헌은 대의를 삶이라 말하고 최명길은 생이 삶이라 말한다.
임금은 살고 싶었고 치욕적인 생을 택했다.
인상적인 것은 최명길이 김상헌과 대립하면서도 그를 높이고 자신을 낮춘다는 것이다.
주화파인 최명길도 본질은 유학자이고 유학자들에게 성리학의 이념이란 그런 것이었다.
김상헌을 충직하고 자신은 불민하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에서 눈돌리지 않는 영리한 인물이다.

160 최명길은 천천히 말했다.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돼지기름'도 내가 좋아하는 파트다.
최명길을 죽이라는 말이 내행전에 쏟아져 소문이 돌자 이시백은 최명길을 서장대로 청한다.
최명길이 자신의 목이 성을 지킬만한 값이 나가겠냐고 묻자 이시백은 못 미칠 것이라 대답한다.
그들은 충열에 반열에 앉아서 역적이 성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수어사는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듣기 좋은 말 대신 자신은 아무 쪽도 아니고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라고 말한다.
이에 최명길은 울컥해서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하고 생각한다.
최명길과 이시백과의 대화는 따스해서 좋다.
가식이 없고 음흉하지 않아 단 몇마디의 말로도 마음이 흡족해진다.

용골대는 성안이 환히 보이고 행궁과 관아가 화포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망월봉을 내버리듯 넘겨주는 조선군을 이해할 수 없었고, 칸은 기를 쓰고 스스로 적이 되어 남한산성에 틀어박혀서는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조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 내내 칸은 국서를 통해 질문 한다. 강자가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힘없는 나라가 청에 맞서는 이유와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문장은 호방하고 거침없으며 꾸밈이 없다. 여기서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느껴지는데 마치 호랑이가 말을 거는 듯하다.
사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조선을 묵직하게 비꼬면서 진심으로 답답해하는 것이 느껴져 웃기다.
칸은 조선의 군신들을 개결하며 말이 준절하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정중하게 칸을 능멸하는 것을 비꼬는 것도 너무 웃기다.
성리학의 나라를 오랑캐가 어찌 이해하겠나!

31 또 너희가 나를 도적이며 오랑캐라고 부른다는데, 네가 한 고을의 임금으로서 비단옷을 걸치고 기와지붕 밑에 앉아서 도적을 잡지 않는 까닭을 듣고자 한다.

309 이제 내가 군사를 이끌고 너의 담 밑에 당도하였는데, 네가 돌구멍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어걸고 싸우려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웃긴 것은 칸의 답답함 뿐이 아니다.
묘당도 헛웃음이 나게 한다.
새해가 되자 이 와중에 예를 갖춰 칸에게 세찬을 보낸다. 산성 안의 백성들은 모두 주리는 판국에 소 두마리를 보낸다.
세찬을 받은 용골대는 너희가 얼고 주린지 오래니 백성을 먹이고 임금을 먹이라고 돌려보낸다.
예라는 명목으로 화친하고자 하는 비굴함과 그럼에도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려는 고집이 느껴진다. 
그리고 조정은 망궐례를 행한다. 청병에게 둘러쌓여 남한산성에 갇혀서 칸이 보는 앞에서 명을 향해 망궐례를 여는 게 제정신인가 싶기도 하고 그걸 또 칸이 잘 참아서 더 웃기다.

삼전도에서 칸이 보낸 국서에 대한 답서를 쓰는 일은 더욱 기가막히다.
'문장가' 파트에 나오는 내용으로 역시 좋아하는 부분이다.
임금은 자정 무렵 호종해서 들어와 군량을 축내던 늙은 당하간 셋과 최명길을 불러들인다.
칸에게 보낼 국서를 올리라고 명하자 역사에 남을 치욕이라 생각한 당하간들은 잠도 못자고 고민한다.
정육품 수찬은 국서를 쓸수 없는 이유에 분뇨의 일을 적어 차자를 올려 곤장을 맞는다.
협심증을 앓고 있던 정오품 교리는 임금의 명을 받고 심장이 터져 죽었다.
정오품 정랑은 간택되지 않을 글을 지어 바친다.
유학자가 군신의 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성리학의 이념을 지키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나.
성리학의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맹목적인 관념이 새삼 놀랍다.
작가는 소설 뒤에 '못다한 말'에 홍익한, 윤집, 오달제가 문초 받았던 이야기를 풀었다.
홍익한은 청 태종에게 "너는 천조(天朝:明)의 역적이니 어찌 황제가 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해 죽는다.
윤집과 오달제는 처자를 청에 데리고 와서 살라는 말에 죽이라고 대답한다.
관우가 생각나는 일화인데, 이런 충절이 명을 향한 것이라 기분이 묘하다.

작가는 침묵 속에서 그 겨울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고, 그 침묵에 자신의 언어로 접근할 수 없었다고 밝힌다.
김훈 작가의 글이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지만 정작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는 세련됨은 여기에서 나오는 듯 싶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이 그랬고, '흑산'도 그렇겠지.

'남한산성'을 읽으며 '아우구스투스' 등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었다.
평소에도 병렬독서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아우구스투스'와 '남한산성'은 같이 읽지 않는 편이 나았다.
둘 다 감정이 절제되고 담담하게 진행되는 역사소설이다 보니 끝엔 좀 질리는 감이 있었다.
자극적이고 감정이 격동하는 책이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