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목사에서 나온 판본으로 읽었다.
자연주의로 대표되는 작가답게 사실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여명과 황혼의 묘사, 특히 달빛을 향한 찬탄, 몽환적인 분위기가 모파상 특유의 감성을 자아낸다.
모파상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지라 책을 읽으며 연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등장인물에게 이토록 가혹한가.
작가의 염세주의가 등장인물들의 뼛속까지 들어차 있다.
그 냉혹하고 비관적인 시선에는 아주 작은 연민조차 없다.
누구나 모파상의 단편을 한 편이라도 읽어 보면 그가 프랑스인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매몰찬 정서와 서사에 위화감이 느껴져 작가에 대해 찾아보니 20대부터 신경질환이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 자살 기도와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은 슈만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렇게나 다른 작품을 남긴 걸 보면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단편의 짧은 줄거리와 감상(스포일러)
1. 목걸이
아름답고 허영심이 많은 마띨드는 장관 관저에서 열리는 파티에 가기 위해 친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리지만 그만 잃어버리고 만다. 빚을 내 다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건네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십 년 동안 고생해서 늙고 거칠며 초라한 여자가 된다. 다시 만난 친구에게 사실을 고백하자 친구는 그 목걸이가 가짜였다고 말한다.
작가의 악의가 느껴질 정도로 주인공에게 잔인하다.
2. 비곗덩어리
매춘부인 불 드 쉬프는 상류 계급의 사람들과 마차를 탄다. 그들은 여행 중 프러시아 장교에게 발이 묶이는데 강건한 애국자인 그녀는 그의 유혹을 거절한다. 그 상태로 며칠이 지나 장교의 목적이 불 드 쉬프인 것을 알게 된 일행은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하룻밤을 종용하고 결국 그녀는 굴복한다. 여행이 다시 시작되자 일행은 그녀를 멸시한다.
이 단편에서는 상류층의 위선과 추악한 행태를 낱낱이 보여준다. 그들은 품위 있는 태도를 취하지만 불 드 쉬프의 희생을 강요하며 천박한 본성을 드러내고 역겨운 농담을 주고받는 추태까지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이용당한 후 경멸당하는 매춘부의 결말이 매우 씁쓸하다.
3. 두 친구
낚시를 좋아하는 두 친구는 전쟁 중임에도 낚시를 하다 프러시아인에게 잡혀 스파이로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다.
해피엔딩이란 없다.
4. 승마
가난한 귀족인 엑또르는 특별 수당을 받아 가족과 소풍을 나간다. 사람들의 시선에 도취되어 자랑스럽게 말을 몰던 그는 거친 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한 노파를 치고 만다. 교활한 노파가 꾀병을 부려 병원비를 계속 쓰게 되고 결국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올 것을 결심한다.
가난한 귀족이 허영심을 가진 결과.
5. 미친 여자
스물다섯에 한 달 동안 아버지와 남편, 갓난아이를 잃어버린 여자는 발작 후 15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프러시아 장교는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자신 앞에서도 누워만 있는 그녀를 무례하다고 생각해 한겨울에 그녀를 침대 매트와 함께 숲속에 버린다.
이 짧은 이야기가 독자를 얼마나 경악하게 할 수 있는지.
6. 미뉴엣
젊은 청년이 뤽상부르의 묘판에서 춤을 추는 영감을 보게 된다. 둘은 친구가 되어 영감이 루이 15세 때 오페라 극장의 무용 선생이었던 것을 알게 된다. 노인에게 미뉴엣이 어떤 춤인지 묻자 노인은 극도의 찬사를 늘어놓다가 위대한 무용가였던 그의 부인과 함께 미뉴엣을 춘다.
회한을 그린 작품도 이토록 냉소적일 수 있다는 것.
7. 의자 고치는 여인
마차를 타고 떠돌아다니며 의자를 고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소녀는 부잣집 소년 슈께를 보고 반한다. 돈을 뺏겨 울고 있는 소년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의 전부를 주고 키스를 하게 되는데, 그 후로 그곳에 올 때마다 돈을 주고 키스하는 일을 반복한다. 소년은 자라 그녀를 못 본 체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 한다. 그녀는 자살 시도 후 그의 약국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며 의자 고치는 일을 하고 산다. 슈께는 그녀의 죽음을 전하러 온 의사에게 화를 내지만 그녀가 남긴 저금을 받는다.
의자 고치는 여인의 임종을 지킨 의사는 귀족 모임에서 사랑에 관한 논쟁 중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 액자식 구성은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귀족들의 오만한 모습과 이야기 속 남자의 위선적인 모습을 함께 지탄한다.
돈을 받고 소녀의 키스를 승낙하는 소년을 보며 그 어린아이가 가진 속물적 욕망에 소름 끼쳤다.
118 흥이 깨진 그들의 얼굴은 '기가 막혀서!'하고 경멸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사랑이란 훌륭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인 것처럼 세련되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만 엄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8. 달빛
마리냥 신부는 여자와 그들의 사랑을 증오한다. 수녀로 만들려는 조카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여 밤에 외출하는 순간 아름다운 달빛에 놀라 찬미하며 명상에 잠긴다. 그때 어느 연인을 보고 신이 인간들의 사랑을 이성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 아름다운 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 연인이 조카딸인 것을 알아보고 정신없이 달아난다.
모파상은 욕망을 배제하는 것 또한 혐오한다. 욕망으로 타락해서도 안 되지만 사제나 수녀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9. 보석
랑땡의 부인은 극장에 가는 취미와 가짜 보석에 대한 취미가 있다. 사랑하는 부인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후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생활이 궁핍해져 가짜 귀금속을 팔기 위해 보석상에 간다. 가짜 보석들이 전부 고가의 진짜 보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내의 배신에 충격을 받아 슬픔에 젖지만 전부 팔고 부자가 되어 재혼한다.
냉소적인 것의 정의 같은 글이다.
10. 미스 하리에뜨
대단한 미남에 여자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노화가 레옹 슈날은 자기 생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물다섯 살에 여행 중 한 농가에서 나이 든 청교도 미스 하리에뜨를 만난다. 그는 청교도를 혐오하지만,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유혹한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고 그녀는 괴로워하며 갈팡질팡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어린 하녀를 애무하는 것을 본 미스 하리에뜨는 우물에서 자살하고 그는 그녀의 시체에 키스한다.
169 그녀는 이따금 나를 알 수 없는 눈초리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종종, 사형수가 최후의 날을 통고받았을 때 그런 눈빛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어떤 신비하고도 격렬한 광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이, 어떤 열광, 실현되지 않는 실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초조해 하고 무력해 하고 흥분하는 욕망이 깃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마음이 억누르려고 하는 어떤 알 수 없는 힘과 처절하게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것이…… 내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무엇을 내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단편을 읽고 모파상은 난봉꾼이었음을 확신했다. 글을 읽는 내내 유혹당하는 기분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관계가 복잡했고 매독까지 걸렸단다.
이렇게 섹슈얼한 배경묘사는 처음이다.
163 모든 것이 즐거움이었고, 모든 것이 매혹적이었습니다. 풀냄새와 해초 냄새로 가득한 훈훈하고 향기로운 공기는 그 야생의 향기로는 후각을, 바닥의 짭짜름한 맛으로는 미각을, 파고드는 감미로움으로는 정신을 끝없이 애무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멀리 잔물결이 이는, 넓은 바닷가의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입을 벌리고 가슴을 부풀려서 대서양을 지나온, 그리고 우리 피부에 가볍게 스치는 파도와의 긴 입맞춤으로 해서 소금기가 빼어 있는 시원하고 느린 바람을 들이마셨습니다.
11. 목가
일자리를 찾아 아이를 맡겨 놓고 홀로 기차에 탄 젊은 엄마는 젖이 많이 차 고통스러워한다. 마주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그녀를 도와주고 고마워하는 그녀에게 자신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오히려 고마워한다.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
12. 노끈
검소한 오슈꼬르느 영감은 진흙탕 속에서 노끈 토막을 줍는다. 그와 원한 관계의 말랑댕 영감은 울브레끄 영감이 잃어버린 지갑을 주운 것이 오슈꼬르느 영감이라고 신고를 한다. 오슈꼬르느 영감은 자신이 주운 것은 노끈 토막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는다. 다음날 지갑을 주운 사람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그가 공범자라고 비난한다. 오슈꼬르느 영감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해명해보아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정신이 쇠약해져 죽는다.
읽는 내내 너무 괴로웠다. 잔인한 모파상.
13. 후회
예순두 살의 싸발 할아버지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독신의 늙은 총각이다. 사랑받아 본 적 없음에 후회하며 옛친구인 쌍드르의 부인을 사랑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녀와 단둘이 산책했을 때 그녀가 보인 모습은 사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 그는 그녀를 찾아가 묻는다. 만일 내가 대담했더라면 당신은 어떻게 했겠냐는 질문에 그녀는 "굴복했겠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불륜인데 아름다우면 괜찮다?
14. 쥘르 삼촌
조세프가 거지에게 5프랑을 주자 친구가 놀란다. 조세프의 가족은 가난하지만 일요일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산책을 했었다. 그들은 방탕하게 살던 쥘르 삼촌에게 사업이 잘되면 배상하겠다는 편지를 받고 십 년 동안 기대와 희망을 키우며 살았다. 둘째 누나의 결혼 후 가족은 여행을 가게 되어 배에 타는데, 배에서 굴 껍질을 까는 늙은 선원이 쥘르 삼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부모님은 그를 모르는 척하고 뒤에서 비난한다. 조세프는 삼촌에게 50상팀을 팁으로 주었고 그 후로 부랑자들에게 5프랑을 주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가난한 집안의 재산을 축내던 골칫거리였던 삼촌이 유일한 희망이 되었으나 몰락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모습을 보고 숨어서 맹비난하는 부모의 모습이 우습다.
역시나 비정하기 짝이 없는 서사지만 조세프가 삼촌에게 보이는 동정심에 숨통이 트인다.
누구에게도 희망은 없으나 누구에게나 사필귀정인 결말이다.
213 사실은 똑같지만, 이런 구별은 당연한 것이야. 왜냐하면 결과만이 행동의 중요성을 결정하기 때문이지.
15. 야성의 어머니
쏘바쥬 어머니는 아들 쏘바쥬를 전쟁에 보내고 홀로 살고 있었다. 그 사나운 할머니는 프러시아 군 네 명을 할당받아 아들을 생각하며 그들과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고 프러시아 군인 넷이 자는 다락문의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러 그들을 죽인다. 그녀는 프러시아 장교에게 총살을 당한다.
235 나는 그 초가집 안에서 타죽은 네 명의 온순했던 젊은이들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고, 또한 그 벽에 기대어 총살당한 또 다른 어머니의 무서울 정도로 처참한 영웅적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16. 아버지
프랑스와는 매일 합승 마차에서 만나는 루이즈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그의 데이트 신청을 허락하지만 자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프랑스와에게 몸을 내맡기게 되고 죄책감에 잠시 그를 떠난다. 9일째 되는 날 다시 나타난 루이즈는 석 달 동안 프랑스와와 지내고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녀에게 싫증이 난 프랑스와는 이사를 해서 자취를 감춘다. 몇 년 후 혼자가 된 프랑스와는 우연히 그녀와 아이를 보고 괴로워하다가 그녀의 남편에게 부탁해서 아이를 만난 후 달아난다.
허무하기 그지없다. 정말 프랑스 소설다운 내용이다.
17. 걸인
열다섯 살 때 마차에 치여 다리를 다치고 불구가 된 그는 40년 동안 동냥으로 살아왔다. 구걸만 하는 게으름뱅이에게 지친 마을 사람들은 더는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이틀 전부터 굶은 그는 12월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희망인 뚜르놀르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에게 문전 박대를 당하고 지나가는 닭을 잡아먹으려 돌을 던져 죽인다. 화가 난 주인과 농장 사람들에게 맞아 초주검이 된 그는 다음날 순경에게 끌려가 감옥에 갇힌다. 이튿날 새벽 순경이 심문하러 가니 그는 죽어 있었다.
작가의 시선이 너무 서늘해서 나 또한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드디어 모파상에게 동화된 것인가, 모파상이 내 속의 염세주의를 끌어낸 것인가.
18. 후원자
장 마랭은 참의원으로 임명되자 매우 거만해져 항상 자신을 과시한다.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 소개장을 써준다. 소나기로 인해 우연히 생뛰르 신부를 만나고 그에게 소개장을 써주는데 그가 범죄자라는 게 밝혀져 비난을 받는다.
알지도 못하는 신부에게 주제넘게 주의를 주고 충고를 하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편협하고 경솔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범죄자에게 소개장을 써준 것을 알게 된 후에 동료에게 이것을 교훈으로 절대 누구를 소개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꼴이 한심하다.
19. 첫눈
노르망디의 한 신사와 결혼한 그녀는 가을이 되어 남편이 사냥에만 몰두하자 혼자 남아 시간을 보내게 된다. 12월이 되고 추위에 고통을 느껴 난로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만 남편은 무시한다. 정월이 되어 부모님이 죽고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다음 해 더 심한 추위의 겨울을 맞게 된다. 난로를 설치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한겨울 맨발로 눈 속을 걸어 폐렴에 걸리자 의사는 난로를 놓으라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깊이 병든 그녀는 남부 지방으로 보내지고 봄에 북부 지방으로 돌아가지만 치유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행복해한다.
그녀의 마음속에 공허함과 고통이 커질수록 신체가 극심한 추위에 시달린다.
본인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난로를 가졌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쓰리다.
20. 고아
마드무와젤 수르스는 비참한 형편에 있는 소년을 양자로 삼고 마음을 쏟았다. 다정했던 소년은 성장하며 성격이 변해 그녀에게 점점 많은 돈을 요구했고 그녀는 거절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제 마드무아젤 수르스와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그녀를 이상한 시선으로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녀는 친척에게 그가 무섭다고 말하고 변두리에 작은 집 한 채를 비밀리에 산다. 다음날 목에 칼을 맞고 죽어있는 그녀가 발견되고 고아가 체포되지만 무죄로 석방된다. 그는 유산을 상속받고 친절하고 쾌활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어 읍장이 된다.
악인의 해피엔딩은 모두의 새드엔딩.
21. 어느 여인의 고백
그녀의 남편인 에르베 백작은 부자였지만 지성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저택에 자주 방문하던 C라는 젊은 남작이 발길을 끊자 그의 태도가 달라진다. 어느 날 에르베는 그녀에게 우리 암탉을 잡아먹으러 오는 여우를 죽이러 목에 가자고 제의한다. 에르베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남자를 총으로 쏘고 부인을 그 위에 내던진다. 하녀 파끼다가 나타나 에르베를 쥐어뜯고 시체에 키스하자 그는 부인에게 용서를 구한다.
모파상의 글이라 남편이 죽인 남자가 그녀의 정부가 아니었다는 것이 오히려 신선했다.
이제는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는 죽는다는 전개가 익숙하다.
남편이 부인을 의심하며 은근히 떠보는 장면의 텐션이 너무 좋다.
모빠상 단편집이 펭귄 레드에디션에 들어가 있는 이유를 알겠다.
294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 은밀한 즐거움으로 이상하게도 몹시 명랑해 보이는 에르베가 내게 이렇게 청했습니다.
"저녁마다 우리 암탉을 잡아먹으러 오는 여우를 죽이기 위해 지키는 목에서 세 시간쯤 지내는 것이 어떻겠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망설였지요. 그러나 그가 이상하고도 끈덕진 눈초리로 나를 주시하는 바람에, 나는 마침내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여보."
걸인부터 후원자, 첫눈, 고아, 어느 여인의 고백까지 선발 순서가 좋다.
걸리는 거 없이 후루룩 읽힌다.
전체적인 라인업도 참 마음에 든다.
충격적인 반전으로 유명한 목걸이를 비롯해 허영심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 파멸한다.
허영심이 있는 게 그렇게 죽을죄는 아니잖아.
그뿐만이 아니다. 상류층의 위선과 속물적인 모습을 비난하고, 가난한 자들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난봉꾼을 어떤 연민도 갖지 못하도록 그리지만, 청교도를 향한 혐오도 강하게 표현한다.
이렇게 강력한 페시미즘은 처음 봤다.
이 정도면 등장인물을 파멸시키기 위해 글 쓰는 게 아닐까.
157 사실상 그녀는 교리에 열광하는 그런 광신자들의 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완고한 청교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여자들은 유럽의 모든 여인숙 주인의 식탁을 자주 방문하고, 이탈리아를 망치고, 스위스를 독살하고, 지중해의 매력적인 도시들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듭니다. 또한 그들의 이상한 괴벽, 화석처럼 굳어진 완고한 품행, 그들의 표현할 수 없는 몸단장 그리고 밤에 상자 속에 그들을 미끄러뜨린다고 생각할 만한 어떤 고무 냄새 등을 어디에나 가지고 다니지요. (미스 하리에뜨)
냉소적인 소설임에도 섹슈얼한 표현이 많다.
자연의 묘사가 왜 이리 야하게 느껴지는지.
242 많은 꿀벌 떼들이 그들 위에서 윙윙거렸고, 부드럽고 끊임없이 윙윙 울리는 소리를 허공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태양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의 위대한 태양은 꽃이 흐드러진 기다란 언덕 위에 내리쬐고 있었다. 이 가장 아름다운 숲은 강렬한 향기를, 방향의 엄청난 입김을, 꽃의 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버지)
그의 소설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
나도 모르게 낙관적인 생각을 품게 되면 더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뭔가 야하고 기분 나쁘고 변태 같은데 매력 있다.
이 비정한 변태. 싫은데 너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