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밥상 보통날

책소개

쓸쓸한 당신에게 드리는
소박한 밥상 하나, 오래된 생각 하나
공지영 작가의 신작 에세이, 『시인의 밥상』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 『시인의 밥상』이 출간되었다. 『지리산 행복학교』 이후 지리산으로의 발걸음을 끊었던 작가는 다시 매달 그곳으로 가 박남준 시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고 그 밥상 위에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더하여 내놓는다. 누구나 그렇듯이 외로움에 목이 메어왔던 밥상이 있었고, 불구덩이처럼 힘겨웠던 밥상이 있었을 것이다.

지리산까지 가서 시인의 밥상을 받기로 한 작가의 결정은 잘한 것이었을까? 작가를 맞았던 건 어떤 밥상이었을까? 아마도 그 밥상은 사람을 살리는 소박한 밥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한 끼 밥을 위해 지리산에서 거제로, 전주와 거문도로, 서울과 평창으로 그 힘든 길을 다녔을 것이고, 가을과 겨울, 봄과 여름의 사계를 그 긴 시간을 지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인이 차려내는 소박하고도 따뜻한 엄마의 보드라운 손길 같은 스물네 가지 음식과 그 음식을 맛보며 써낸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슴슴한 글은 이 책을 읽는 우리를 한껏 충만하게 해준다. 언제나 고마움보다 더 큰 그리움을 주는 그들은 모든 쓸쓸하고 서러운 시간들을 서로 챙기며 채운다. 우리는 『시인의 밥상』을 읽으며 우리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깊게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나이와 닮아갈 것이다. 밥상에 마주 앉은 사람과 함께.

[예스24 제공]



이 책은 공지영 작가가 버들치 시인의 심장 수술을 위해 쓴 책이다.
작가는 출판사의 산문집 제의를 거절하는 시인에게 밥상을 받아 글을 썼다.

버들치 시인도 슴슴하고 시인의 밥상도 슴슴하다 보니 글도 슴슴하다.
<지리산 행복학교>보다 더 감동적이거나 더 유쾌하지도 않지만 더 따뜻하다.
공지영 작가의 글은 뭔가 항상 신경이 돋아있는데, 힘이 조금 빠진 것 같아 읽기에 편안했다.

작가는 자신이 버들치 시인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남의 것을 남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심장 수술을 두 번 한 후 '혼자 살던 자신이 갑자기 죽어도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모아두는 관값 200만 원'을 현실에 맞게 300만 원으로 올렸다.

<시인의 밥상>은 버들치 시인의 요리 그리고 그와 그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중 시인과 어머니의 일화가 인상 깊었다.


45 "요양원에 들어가니 물리치료를 받고 계시다 하데. 물리치료실로 가니 할머니들이 대여섯 분 누워 계셨어. 안내인이 '할머니 아드님 버들치 오셨어요' 이러니까 대여섯 명의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거야. 일제히 환한 얼굴로 말이야. 그러더니 일제히 아니구나, 하는 얼굴로 다시 돌아눕는 거 있지. 내 가슴이 그때…….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 다가갔어. 내 눈에는 이미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가서 어머니, 하니까 이번엔 어머니가 울데. '세상에! 내가 이제 우리 아들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하시면서……. 그래서 이번엔 모자가 붙들고 같이 울었어."
 

책의 중간중간에는 시인이 직접 쓴 '악양편지'라는 짧은 글도 12편 들어가 있다.
시인의 소박하고 따뜻한 성정이 느껴지는 글이다.
시인 아니랄까 봐 글이 다 시 같다.


61 한 20년 전쯤 전화로 어머니께 동치미 담는 법을 물었더니
잠시 침묵을 하셨다
한참 말씀이 없으셨는데 목이 푹 잠긴 목소리로
동치미를 담는 법을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뉴슈가나 당원,
이런 것 조금 넣어야 맛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설탕을 넣으면 시원한 맛이 덜하고 일찍 맛이 변해버린다고
그 끝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들이 좋아하는 당신의 동치미 담는 법
아들에게가 아니라 며느리에게 들려주며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침묵 끝에
끝내 혼자 살 거냐고 풀 죽은 목소리가
전화기 건너편에서 흘러나왔다


그들의 일상 속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성찰을 도와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저자도 친구들처럼 힘 좀 빼고 살았으면 좋겠다.


85 낮술부터 시작해 자정이 넘도록 이곳에 앉아 있자니 정말로 새벽 강어귀에 앉아 모든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이 나이에 이르러 이제 나는 안다. 삶은 실은 많은 허접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내 남은 생에 소망이 있다면 그중 무엇이 허접하지 않은지 식별할 눈을 얻는 것인데, 여기 새벽 강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중 몇 개를 건져 올리는 기분이었다. 그것들은 살아 푸르른 숭어 같았다.


명색이 제목이 <시인의 밥상>인데, 가장 먹고 싶었던 콩나물국밥의 레시피도 쓴다.
이건 진짜 꼭 해 먹어 봐야지.


37 먼저 큰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끓인 육수에서 다시마와 멸치를 건져낸 후 다듬은 콩나물을 넣어 한 김만 오르면 얼른 건져 찬물에 담근다(여기에 별표를 세 개쯤 주고 싶다. 이것이 유명한 콩나물국밥집의 비결이라고 했다. 물은 아주 차가워야 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얼음을 썼다). 그리고 집간장으로 간을 약간 슴슴하게 맞춘다.
 붉은 고추, 푸른 고추, 파, 마늘을 곱게 다져 준비하고 김치도 아주 작게 송송 썰어놓는다. 새우젓 약간과 고춧가루, 부순 김도 준비한다. 국밥그릇에 밥을 먼저 담고 콩나물을 그 위에 올린다. 푸른 고추와 붉은 고추, 파와 마늘, 김치 썰어놓은 것, 새우젓과 김가루를 구절판에 올리듯 둥그렇게 올리고 가운데 붉은 고춧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준비한 육수를 붓는다.


이 작가의 글이 늘 그렇듯 이 책도 정치색이 아예 없진 않다.
진짜 내 참, 싶지만 출판사가 또 한겨레이니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