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보통날

책소개

유미주의에 대한 탐구가 돋보이는 앙드레 지드의 대표작!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앙드레 지드의 대표작『좁은 문』. 인간을 사랑한 소년과 신을 더 사랑한 소녀, 어긋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유미주의에 대한 탐구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1909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다양한 분석과 해석을 낳고 있다.
파리에 사는 예민한 소년 제롬은 매년 여름 휴가를 노르망디 시골의 외삼촌 댁에서 보낸다. 그곳에서 그는 사촌 알리사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알리사는 점차 자신을 향한 제롬의 사랑이 그의 영혼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확신하게 되고, 제롬을 구원하기 위해 심신의 아름다움을 억누르기로 결심한다.
한편, 알리사의 동생 쥘리에트 역시 제롬에게 연정을 품지만 언니를 위해 그를 포기하고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한다. 동생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알리사는 종교적 신앙심으로 제롬을 거부하는데….
시리즈 살펴보기!
세계적인 작가들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고전 문학 시리즈「펭귄클래식」한국어판. 충실한 원본을 토대로 소개하고,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자 및 현대 주요 작가들이 직접 쓴 서문을 함께 실어 전문성을 갖추었다. 또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별하되,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펭귄클래식판이다.
좁은 문은 주인공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무척 사랑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제롬에게 넓은 문은 부정한 외숙모, 좁은 문은 고결한 알리사다.
좁은 문은 곧 제롬이 알리사와의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고행과 비애의 과정이다.
제롬은 청교도적 규율을 미덕으로 여기며 스스로 억제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우쭐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알리사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그녀와의 사랑만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며 전부다.

알리사는 제롬보다 더욱 청교도적인 인물이다.
그녀에게 좁은 문은 둘이 함께는 걸을 수 없는, 과정이 아닌 도달해야 할 목적이다.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며 나누는 대화에서 그 견해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제롬은 하느님 안에서 결합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똑같이 섬기는 것 안에서 필사적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알리사는 그가 섬기는 마음이 순수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제롬이 알리사를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면 천국 같은 건 없어도 그만이라고 말하자 알리사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말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하지만 극 중 내내 그를 밀어낸다.
처음 그를 밀어내는 이유는 동생 쥘리에트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얼마나 화가 나던지.
제롬의 그 절절한 애정을 다 받아놓고 그를 거부하며 자기연민에 빠져 이를 희생이라고 여기는 것이 어이가 없다.
이때 그냥 제롬이 쥘리에트와 연결되어야 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쥘리에트가 거절해왔던 테시에르의 구혼을 받아들이고, 제롬은 알리사에게 편지를 보내서 관계를 회복한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던 중 제롬은 알리사에게 아직은 서로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는 만나지 못하는 시련을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달게 버틴다.
두 사람은 편지를 계속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고 제롬은 그사이 징집된다.
2년 후 제대를 앞둔 그에게 알리사는 그와 만날 생각으로 삶이 끝나는 것 같다고 편지한다.


122 만날 날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내 기대는 점점 더 불안한 마음으로 변해 가고 있어. 거의 두려움에 가깝다고나 할까. 네가 오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지금은 그 사실이 두렵기만 해. 더 이상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네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 층계를 올라오는 네 발소리가 떠오르면서 심장의 고동이 멈춰버리는 것 같고, 가슴이 조여와…… 내가 너한테 말을 걸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절대로 하지 마…… 내가 살아온 날들이 여기서 끝나 버리는 것 같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내 삶은 끝이야…….


과연 알리사를 고깝게 보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제롬에게는 아벨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쥘리에트를 짝사랑했던 인물로 작가가 되어 외설스럽고 작품성 있는 책으로 성공한다.
알리사는 그의 소식을 전하며 구제 불능의 경박한 기질이라 폄하하고 통속 극장에서 상연을 준비하는 아벨을 가엾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런 오만한 태도는 작가가 아무리 중립적으로 썼다고 말해도 청교도적 사고의 오만함과 개신교에 대한 비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이런 이해 못 할 행동들의 이유는 그녀가 남긴 일기를 통해서 밝혀진다.
알리사는 어린 시절 부정한 어머니의 외도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자랐다.
그녀가 제롬에게 욕망을 느꼈던 날 아버지에게 문득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완덕을 원했던 것은 오직 그를 위해서였다는 걸 깨닫는다.
하느님과 제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도 깨닫고 그가 더 많은 덕행을 쌓도록 그를 피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은 그가 하느님께 도달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사랑을 구속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반복해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희생'이란 예수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행한 자기희생과 같이 숭고한 표상이자 그리스도인에게 소명인 종교적 신념이다.
때문에 알리사는 희생하는 것을 덕을 쌓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제롬은 결국 알리사에게 거절을 당한다.
알리사는 우리가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행복 외에 더 무엇을 바라야 하냐고 제롬이 묻자 그녀는 '성스러움'이라고 대답한다.
제롬은 "난 너 없이는 그곳에 이르지 못해"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제롬에게 미덕은 곧 사랑이며 그녀를 위한 것이고, 알리사에게 미덕은 그 자체로 추구되어야 할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의 형태이다.
두 사람의 이런 차이는 그들의 사랑을 계속 어긋나게 하고 결국 헤어짐을 부른다.


185 사랑하는 제롬, 언제나 한없는 애정으로 너를 사랑해. 하지만 이제 다시는 네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내 눈, 내 입, 내 영혼에 부과하는 구속이 너무도 가혹하기에, 너와 헤어지는 것이 내게는 해방이자 쓰라린 만족이야.


3년 만에 재회한 알리사는 제롬에게 받은 자수정 십자가 목걸이를 돌려주는 것으로 관계를 정리한다.
제롬은 이별을 말하는 그녀에게 나를 사랑했다면서 왜 번번이 밀쳐 내기만 한 건지 묻는다.
그녀는 마침내 그와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165 "아니, 이젠 늦었어, 제롬. 우리가 사랑을 통해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을 서로에게서 엿보게 된 그 날부터 이미 때는 늦었던 거야. 제롬, 네 덕분에 내 꿈이 아무리 높아졌다 한들 인간적인 만족 앞에서는 전락해 버리기 마련이야.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삶이 과연 어땠을까 곧잘 생각해 보곤 했어. 우리의 사랑이 완전함을 잃는 그 순간부터…… 나는 우리 사랑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을 거야."


알리사는 그와 헤어진 슬픔으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파리로 떠난다.
곧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작은 요양원에서 제롬에게 일기를 남기고 죽음을 맞는다.
일기를 읽고 그녀에게 공감은 할 수 없어도 동정은 갔다.
본인의 신념으로 인해 사실 누구보다 가장 괴로웠을 인물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신념 속에서 죽은 그녀의 마지막이 안식이 아니라 절망이었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201 10월 16일
 제롬! 완전한 기쁨을 네게 일깨워 주고 싶구나.

 오늘 아침, 구토증의 발작이 나를 산산이 조각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나 자신이 너무도 무력하게 느껴져서 잠시 죽기를 바랐던 것도 같다. 아니, 그게 아니다. 처음에는 내 온 마음이 의연하리만치 편안했다. 그러고는 육신과 영혼이 전율을 일으키는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마치 내 삶을 일깨우는 돌연한 계시와도 같았다. 끔찍할 정도로 벌거벗은 내 방의 벽들을 난생처음 보는 것만 같았다. 섬뜩했다. 지금도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평정을 되찾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오, 주여! 당신을 모독함이 없이 제가 마지막에 이를 수 있기를!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무릎을 꿇었다…….
 지금, 빨리,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기 전에 죽고 싶다.


그런데 이 소설이 유미주의의 탐구가 돋보이는 소설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건가? 독자가 답답해 죽든 말든 내 갈 길 간다고?
유미주의의 인물이라면 뤼실 뷔콜랭(외숙모)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와 그녀로 인해 태도를 정한 알리사,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을 보면 유미주의의 악함을 널리 널리 알리겠다는 뜻인가?
청교도에 불만을 품은 작가가?

고전은 분명 재미없게 읽었는데도 다시 읽고 정리하다 보면 꽤 괜찮은 내용인 것만 같은 때가 있다.
이래서 고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