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보통날

좋은 소설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다.
중간에 참을 수 없어지는 지점이 있는데 잔잔한 소설임에도 진저리가 날 정도의 고비가 찾아오고 그 고비를 넘기면 스토너에게 물들어 그의 삶을 관조할 인내심이 샘솟는다.
소설을 다 읽고 찾아오는 여운과 감동은 내 인내심에 몇 배나 되는 보상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이 책의 독후감을 쓸 수 있나, 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나? 내가 감히?
어차피 그동안 써온 독후감도 내가 보려고 남기는 기록이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걸 글로 적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작가의 문체는 소박했고 주인공은 담담했고 소설은 위대했다.



책소개

세상이 잊고 있던 20세기의 걸작, 늦고도 새로운 감동을 전하다!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된 후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잊혀졌던 작품이 유럽 출판계와 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5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전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 『스토너』의 이야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을 사랑했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윌리엄 스토너. 세상의 기준에서 실패자와 다른 없는 삶을 산 한 남자의 이야기가 발표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주목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접한 셰익스피어의 일흔세 번째 소네트를 접한 후 문학을 사랑하게 된 스토너는 고향에 돌아가는 대신 대학에 남아 영문학도의 길을 택한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교수가 되지만 어느 순간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어 슬프고 쓸쓸한 삶을 살아간다. 세계대전과 대공황 속에서도 개인적인 불행과 사랑의 실패에 시달리면서도, 갑작스러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일생을 바친 자신의 연구처럼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한다. 자신의 일생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 말이다.

언뜻 초라한 실패담에 불과해 보이는 소박한 이야기이지만 작가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의 삶을 조금 다르게 그려냈다. 특유의 집요하리만치 세밀한 서술로 이 특별할 것 없는 남자의 인생을 진실하고 강렬하게 묘사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 스토너에 깊이 공감하게 만들었다. 비록 저자가 그려낸 스토너의 삶은 쓸쓸했지만 우리는 누구나 철저히 혼자라는 인생의 진리를,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임을, 우리의 일생에 인생의 모든 빛나는 순간이 담겨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바로 이것이 스토너의 삶에 귀 기울이는 이유이자 뜨거운 감동의 근원일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스토너는 미주리 대학에 입학해 영문학에 빠지고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 교육자의 길을 택하게 된다.
대학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박사과정 동료인 데이비드 매스터스, 고든 핀치와 친해진다.
두 친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는데 전쟁 중 매스터스가 죽는다.
그는 스토너와 짧은 기간을 어울린 친구였지만 스토너는 죽기 전까지도 문득 그를 떠올리곤 한다.
매스터스는 술자리에서 스토너를 이렇게 평가했다.
실제로 스토너의 삶이 그의 말대로 흘러간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왜 그 무심한 스토너가 그를 평생 기억했는지 알 것 같다.


46 "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 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목화밭의 바구미, 콩줄기 속의 벌레, 옥수수 속의 좀벌레. 자네는 그런 것들을 마주 보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해. 너무 약하면서 동시에 너무 강하니까. 이 세상에 자네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없네."


전쟁이 시작되고 스토너는 자신의 마음속에 엄청난 무심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무심함은 그가 인생의 고비들을 무난히 받아들이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과 같다.
핀치와 매스터스가 입대 전 함께 할 것을 권유하자 그는 슬론 교수를 찾아간다.
의논하는 그에게 슬론 교수는 '학자에게 평생 구축하고자 했던 것을 파괴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스토너는 고민 끝에 대학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스토너는 부모의 죽음과 가정의 실패, 연인과의 이별 등 큰 상실의 슬픔을 겪을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우는 때는 슬론 교수의 장례식이다.
덤덤하고 꾸밈없는 이 소설은 스토너가 슬론 교수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 서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태도와 인생관을 보면 그 마음의 크기를 알 것 같다.
슬론 교수가 그에게 했던 이 말이 스토너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갈림길마다 선택의 기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54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교수들을 위한 리셉션에서 스토너는 이디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한다.
하지만 정신이 불안정하고 히스테릭한 이디스는 스토너를 거부하고 급기야 스토너를 괴롭히기에 이른다.
스토너는 그런 그녀를 무심히 받아들이고 해결되지 못한 가정불화는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를 이용해서 그를 괴롭히는 이디스를 보며 나도 스토너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도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스토너를 보며 함께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울화통이 터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스토너의 이 담담함이 그의 무기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무기는 그가 그녀의 히스테릭을 견디게 해주었지만 한 편으로는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도 않고 그녀를 괴롭게도 하는 무기였으리라.
스토너가 죽기 전에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384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아주 먼 거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손이 이불 위를 움직여 그녀의 손에 가 닿았다.


로맥스는 장애를 가진 인기 있는 교수이다.
왼쪽 어깨에서 목을 향해 혹이 있고 상반신은 두툼하고 구부정하며 다리는 가늘고 오른쪽 다리는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의 묘사를 보며 콰지모도가 생각났다.
그 기괴한 몸뚱아리와 그로 인해 비뚤어진 마음.
하지만 그는 콰지모도의 발톱의 때만도 못한 인간이다.
뒤틀린 왼손과 왼발에 장애가 있는 찰스 워커는 같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가 편애하는 학생이다.
워커는 게으르고 부정직하며 무지하고 형편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스토너의 세미나에서 낙제를 받고 구두시험에서도 불합격을 받는다.
구두시험 과정에서 로맥스는 워커의 무지를 감싸고 그를 돕지만 스토너는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하는 워커를 결코 합격시키지 않는다.
이에 분노한 로맥스는 학과장이 된 후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워커를 캠퍼스로 돌아오게 하고 스토너에게는 부당한 처우를 한다.
찰스 워커의 일은 부당한 일에 대해 무기력하기만 한 스토너가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유일한 사건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에서만큼은 스토너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하나 정도는 있다는 것에 왠지 안심됐다.
로맥스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자격지심에 절어 있는 인간.
기형적인 외모보다도 심보가 너무 고약하다.
대학교수가 그것도 학과장씩이나 돼서 이렇게 무식하고 교양 없게 행동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 인물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에서 스토너가 더욱 빛이 났다.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인간의 위엄을 느꼈다.

캐서린 드리스콜은 스토너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이다.
평생 금욕적인 스토너에게 그녀는 그가 가진 유일한 욕망이다.
두 사람에게 중요한 건 욕망과 공부뿐이라며 정신과 마음이 통하는 사랑을 나누고 스토너는 그녀와의 사랑으로 인해 사랑의 기존 관념의 진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로맥스의 공격으로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스토너는 매우 아파하지만 이 또한 견뎌낸다.


279 어렸을 때 두 사람은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별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이 믿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체험이 먼저 찾아왔으므로, 이 새로운 발견이 오로지 두 사람만의 것처럼 보였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스토너의 딸 그레이스의 이야기다.
아이를 돌보지 않는 이디스 때문에 그레이스는 일하는 스토너의 서재에서 놀며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어머니의 빈자리에도 아버지와 안정적으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그들만의 기쁨을 느낀다.
두 사람이 여느 때처럼 서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이디스가 들어와 그레이스를 스토너와 갈라놓는다.
그날부터 이디스는 그레이스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하고 여자아이다운 모습과 사교적인 생활을 강요한다.
스토너와 그레이스가 이야기만 나눠도 폭력적일 정도로 그레이스를 괴롭혀서 부녀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어린 그레이스는 침묵 속으로 도망치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아이를 가져 집으로부터 도망친다.
결혼 후에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알콜중독자가 된다.
이디스가 그레이스를 망가뜨리는 것을 스토너는 슬퍼하면서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레이스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녀의 성정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이디스와의 생활이라는 조건과 본인의 무심한 본성 뒤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 역시 울화통이 터졌지만 나 또한 스토너의 성정을 잘 알고 그를 이해하므로 더욱더 슬퍼졌다.
그가 결혼 후 처음부터 이디스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아니 그보다 전에 이디스의 본성을 보았을 때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했더라면 이렇게 한 사람의 불쌍한 인생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스토너와 그레이스가 함께 웃는 장면이 너무 좋아서 그만큼 안타까움이 컸다.

늙은 스토너는 암에 걸려 교수직에서 물러나고 집에서 얼마 남지 않은 날을 보낸다.
그는 통증과 인생에 대한 회한, 진통제가 주는 평안과 망각 속에서 '넌 무엇을 기대했나?' 하고 자신에게 질문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학문의 길이 끝나자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17장 스토너가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죽기 전까지의 시간은 마치 스토너가 되어 그의 인생의 회한을 직접 겪는 기분이 들었다.
이 훌륭한 장이 끝나고 나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여운과 감동이 밀려온다.
이건 정말 아무리 잘 설명해도 직접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이 소설의 위대함은 책을 덮었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387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런 감동을 주는 책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우구스투스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더 훌륭한 소설을 꼽으라면 스토너라고 할 것이다.
이 잔잔한 소설이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너무 잘 알겠다.
그리고 이 감동을 설명할 수 없음에 아쉽다.
미국 소설 특유의 감성과 편견을 무참히 깨버리는 과묵하고 잔잔하고 깊은 이 소설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안 읽어보고 죽기엔 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첫 장을 읽었다.
그의 인생이 완벽하게 요약되어 있었다.


8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