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책 읽을 시간도 없고 독후감도 그동안 뭘 그렇게 자세히 썼는지 책 읽는 시간과 맘먹게 오래 걸려서 최대한 요약해서 단순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에 고른 게 이 책이라니. 진짜 바본가.
시간 없으니 짧고 재밌는 거 읽어야지 했는데 그동안 읽은 문학 중 가장 사색을 많이 한 것 같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히 해답을 제시해 줄 만한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라 주장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보르헤스가 '환상'이라는 키워드로 선별한 단편집이다.
그중 세 번째 <러시아 단편집>은 도스토옙스키의 <악어>, 레오니드 안드레예프의 <라자로>,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 선정 봐라. 정말 기가 막힌다. 이걸 어떻게 안 읽어.
<악어>는 이반 마트베이치가 파사주에서 전시 중인 악어에게 한입에 잡아 먹히는 이야기다.
다행히 악어 내부가 텅 비어 있어 목숨을 유지한 이반 베이치는 그 속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을 꿈꾸고 주인인 독일인은 자신의 자본인 악어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이 단편은 이반 마트베이치의 친구이자 유일하게 상식적인 화자를 통해 보여주는 풍자소설이다.
061 이처럼 악어의 내부가 텅 빈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것은 진공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따라서 손에 걸리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삼켜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서야. 이것이야말로 모든 악어들이 우리의 형제를 삼키는 것에 대한 유일하고도 타당한 원인이지. 인간의 구조는 그것과 달라. 예를 들어, 인간의 머리는 비어 있으면 비어 있을수록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을 덜 느끼지. 이것은 일반적인 법칙에서 벗어난 유일한 예야.
이반 마트베이치가 악어에게 잡아 먹히자 악어주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악어를 더 걱정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악어의 배 속에 들어간 이반 마트베이치마저 경제 원칙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당시 러시아에 만연한 배금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045 "이반 마트베이치가 어떻게 되냐고요? 나도 정말 그 문제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외국 자본을 조국에 유치하는 일로 이렇게 분주하니 말이죠. 당신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유치한 악어 소유주의 자본이 이반 마트베이치 덕분에 이제 막 두 배가 되었는데, 우리는 외국 소유주를 보호하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순자본이라 할 수 있는 악어의 배를 가르려고 애씁니다. 자, 이것이 과연 분별 있는 행동일까요? 내 생각에는 말이죠, 이반 마트 베이치는 조국의 진정한 아들로서 자기 때문에 외국 악어의 가치가 두 배, 아니, 어쩌면 세 배로 늘어난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부인인 엘레나 이바노브나는 악어가 남편을 삼킨 충격으로 '프스포로치'라고 외친다.
'프스포로치'는 러시아어로 '가르다'라는 의미와 '채찍질하다'라는 이중의 의미가 있는 동사이다.
화자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그런 반동적인 소망은 실현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수적인 도스토옙스키가 나로드니키를 풍자하며 조롱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뿐 아니라 이반 마트베이치는 "야만적인 사람은 독립을 좋아하고 현명한 사람은 질서를 좋아하지. 질서가 없다는 것은……"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카람진의 소설 <시장의 부인 마르파>의 한 구절로서, 이 구절 다음에 '전제 권력 없이는 질서도 없다.'라는 구절이 따른다.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이 환상적인 짧은 단편 속에 풍자가 가득하다.
등장인물의 궤변 때문에 속 터지는 화자의 마음을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누구도 내 소유의 악어를 살 수 없다며 매일 10만 탈러씩 벌 거라는 독일인과 악어 속에서 천 년은 살 거라고 하는 이반 마트베이치를 보며 화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071 나로 말하자면, 이 순간 나는 우선 독일인을 흠씬 두들겨 패고, 그다음에는 무터를 더 흠씬 두들겨 패고, 마지막으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자존심에 대해 이반 마트베이치를 누구보다 많이, 누구보다 세게, 실컷 두들겨 패고 싶은 열망에 타올랐다.
레오니드 안드레예프의 <라자로>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인물 라자로가 예수에 의해 부활한 후의 이야기이다.
쾌활하고 온화한 라자로는 부활 이후 과묵하고 무관심한 사람이 된다.
그의 공허하고 심연 같은 눈을 바라본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죽는다.
이를 알게 된 아우구스투스는 라자로를 불러들여 그의 눈에서 무한한 공허와 무한한 어둠을 느끼고 그의 눈을 지져서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어느 날 그는 광야로 걸어 나갔다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태양이 대지로 기울면 라자로는 광야로 떠나 태양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고는 했다.
마치 죽음 이후의 세상에는 빛 한 점 없는 듯한 태도에 막연한 공포심이 들었다.
이 소설로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동안 몰랐을까 싶다.
수 없이 들었던 라자로의 이야기지만 부활 이후의 모습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뛰어난 상상력은 작가가 마치 죽음을 실제로 체험해 본 듯한 놀라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 깊이 배어 있는 삶의 허무함에 가슴이 서늘했다.
104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낀 모든 사물들이 공허하고 가볍고 투명하게 되어 버렸다. 그것들은 마치 밤의 어둠 속에 드리워진 밝은 그늘 같았다. 왜냐하면 온 우주를 에워싼 그 거대한 어둠이, 해도 달도 별들도 흩어 버리지 못한 그 어둠이, 어머니처럼 끝없는 검은 덮개로 이 땅을 덮어 감쌌기 때문이다.
내가 한 모든 일은 무의미하며 내가 쓴 열 권의 책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 드 모파상(<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창틀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친 고등법원 판사 이반 일리치가 그로 인해 겪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반 일리치는 임신 이후 거칠고 과격해지는 아내를 피해 판사 직무에 매달린다.
아내에게 공격받는 남편들은 어째서 다들 해결보다 도피를 택하는 것일까.
판사인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과도 직무상의 관계 의외의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다.
그렇게 가정에서 멀어지고 동료들과 능수능란하게 관계를 맺는 그는 죽음 앞에서 누구에게도 이해와 동정을 받지 못한다.
그의 죽음 이후 동료들은 이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얻게 될 자리와 이익을 생각하고, 아내는 연금을 계산한다.
점점 심해지는 통증을 느끼며 자신이 죽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된 이반 일리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직무로 달아나지만 판사의 직무가 자신이 숨기려는 것을 더는 숨겨주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다.
집에서 요양하게 된 이반 일리치를 가장 괴롭힌 것은 거짓이었다.
모든 사람이 묵인하고 있는, 그가 단지 아플 뿐 죽어 가고 있지 않다는 거짓이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하인 게라심과만 시간을 보낸다.
195 그는 키제베체르의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의 예, '즉 카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따라서 카이는 죽는다'라는 그 예를 평생에 걸쳐 오직 카이에 대해서만 옳은 것으로 보았지 자신에게는 결코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반 일리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유의 과정에 귀를 기울인다.
영혼의 목소리가 그에게 "너는 예전에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다.
그는 문득 혹시 자신이 바르게 살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과거에 대한 회상과 죽음에 대한 생각 속에 침잠한다.
226 도대체 이게 뭐지? 어째서? 그럴 리 없다. 삶이 그토록 무의미하고 추악할 리 없다. 만약 삶이 그토록 추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면, 죽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은 어째서 그토록 고통스러운가? 뭔가 이상해
이반 일리치가 죽기 한 시간 전, 아버지의 침대로 다가온 아들은 그의 손을 붙잡아 자기의 입술에 대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옳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아직은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용서해 줘prost'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는 '내보내propyst'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내와 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도록 그들을 구하고 자신도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기력이 없어 말을 바로잡지 못하고, 고통을 받아들인 후 더 이상 죽음은 없음을 깨닫고 죽는다.
죽음 앞에서야 자신의 삶이 옳지 않았음을 알고 '옳은 것'을 실행하려 하지만 끝내 가족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얻은 깨달음은 죽음 대신 빛이 있게 했다.
삶의 성찰 과정을 보며 정말 톨스토이답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단편들을 읽으며 느껴야 했던 삶에 대한 반성과 교훈들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재미없고 고지식하다는 편견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이렇게 위대한 작가임을 참 재미없는 방법으로 배웠다.
아내에게 공격받고 가정 밖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모습이나 죽음을 앞둔 모습에서 스토너가 생각났다.
죽음 앞에서 삶을 성찰하는 모습을 훨씬 큰 비중으로 다루는 이반 일리치가 당연히 더 섬세하고 깊이 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그의 작품에서 일생 다루고 있는 테마인 듯하다.
옳은 삶, 도덕적인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기 성찰로 이끈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문학이 무엇인가 그리고 삶은 무엇인가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238 '그래, 모든 것이 옳지 않았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할 수 있어. "옳은 것"을 할 수 있어. 그런데 도대체 "옳은 것"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묻다가 갑자기 침묵했다.
이 책이 특히 더 좋은 것은 단편의 선발과 배치이다.
<악어>는 죽음보다 두려운 경제적 손실을, <라자로>는 죽음 앞에서 허무한 삶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 앞에서 되새기는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작가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다.
<라자로>를 읽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 가늠하기 어려운 무한한 죽음의 공포를 본 후 그 죽음을 한갓 인간이 감당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정말 몸서리치게 좋았다.
보르헤스는 천재다.
뭘 좀 아는 사람이 짜주는 커리큘럼 정말 최고다.
각주도 굉장히 좋다.
저자의 각주인지 보르헤스의 각주인지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필요한 각주만 깔끔하게 설명한다.
각주를 보며 감탄하기는 또 처음이다.
바벨의 도서관 전집 다 읽고 싶다.
다음부터는 진짜 독후감 짧게 써야지.

